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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진로교육, 꿈을 Job자!/ <중> 학교에서 적성 파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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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진로교육, 꿈을 Job자!/ <중> 학교에서 적성 파악해야

입력
2012.05.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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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진로 상담 목말라하는데, 교장은 "수업이나 해라" 압박

지난해 진로진학상담교사로 발령받은 수도권 A고의 김모 교사. 학생들에게 단순히 교과지식을 전달하는 대신 상담을 통해 다양한 직업과 진로를 제시할 수 있게 됐다며 의욕에 넘쳤지만 막상 학교의 분위기는 기대와 달랐다. 진로진학 상담(주당 8시간)을 강화하라는 취지로 수업 시간을 대폭 줄이자(주당 10시간) 교장, 교감은 김 교사를 '한가한 교사'로 취급하며 온갖 잡무를 맡겼다. 진로교육과 무관한 업무에 시달린 김 교사는 스트레스로 위궤양이 생겼고, 결국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을 포기하고 이전처럼 교과 교사로 돌아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들의 진로교육을 강화하고, 상담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와 올해 3,016명의 진로진학상담교사를 중ㆍ고교에 배치했지만 일부 학교의 운영은 파행적이다. 진로교육보다 입시 실적을 중시하는 교장, 교사들의 인식이 진로교육을 허울에 그치게 만들고 있다.

입시 앞에서 홀대받는 진로상담

진로진학상담교사는 기존 교사 가운데 지원을 받아 600시간 가량의 연수를 거쳐 학교에 배치된다. 교과부는 매년 1,500명 가량 선발해 2014년에는 전국 모든 중ㆍ고교에 1명 이상 진로진학상담교사를 배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진로진학상담교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학교장의 개인적인 인식과 성향에 달려있는 실정이다. 경기 B고의 진로진학상담교사는 "교장이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중요하다며 일반 교과목 수업을 맡겼다. 진로교육 수업만 해야 한다고 이의제기를 하면 '진로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진로지도와 상담은 이전처럼 담임교사에게 맡겨 진로진학상담교사는 그저 이름만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전문성과 역할은 아직까지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서울 C고의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처음 제도를 도입할 때 남아도는 교사를 활용한다는, 일종의 구조조정 성격이 있었다. 때문에 일부 교장들은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보건교사와 전문상담교사는 수업을 하지 않아도 고유 업무를 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데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수업을 덜하는 교사로만 인식돼 억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와의 갈등도 큰 걸림돌이다. 적성과 소질에 맞춰 학생들이 자기 진로를 찾도록 교육을 해도 정작 학부모들은 학업성적에 따라 자녀의 진로를 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상담과 각종 심리ㆍ적성검사를 통해 학생에게 맞는 직업과 전공 분야를 안내했는데 학부모는 명문대와 취업 잘되는 학과 진학을 고집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강요하는 학부모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진로교육 정책 연속성 있어야

그러나 제 역할을 하면 진로진학상담교사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경기 안양 부흥고의 진로진학상담교사인 정종희 교사는 "진로교육 수업을 받은 1,2학년 학생들은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낀다. 28년간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번도 수업 때 박수를 받은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진로교육 수업 때 고맙다고 박수를 쳐주더라. 그 정도로 아이들이 진로교육에 목말라 하고 있고, 심지어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진로교육 교재와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영어 수업 준비하던 것의 몇배 이상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아이들의 변화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다만 "1,800명 전교생을 커버하기엔 역부족이어서 학생수가 많은 학교엔 진로진학상담교사가 추가로 배치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숙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는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진작에 도입됐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다. 정부가 급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진로교육 콘텐츠나 프로그램이 매우 부족한 게 문제지만 강제적으로나마 진로교육에 대한 시스템을 만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진로교육의 강화로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열린 셈"이라며 "다음 정부에서도 연속성을 갖고,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제화되는 진로교육

교과부는 이달 초 진로체험활동과 상담 등 진로교육을 정식 수업시간으로 인정하고, 진로진학상담교사 배치의 법적 근거를 담은 진로교육진흥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진로교육에 대한 학생의 권리와 국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명시됐다.

박성수 교과부 진로교육과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역할과 권한이 분명해져 학교장이 임의로 진로교육을 파행 운영하거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할 경우 제재할 수 있게 된다. 진로교육에 대한 학교장 연수를 시행하고 있고, 확대할 예정이어서 진로진학상담교사 도입 초기의 혼란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핀란드는 어떻게

"띤야, 지난번 상담 때 헤어 디자이너랑 메이크업 아티스트 사이에서 고민한다고 했잖아. 요즘은 어떠니?"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직업 체험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4일 핀란드 헬싱키에 위치한 라또까르따노 초중등학교 운동장. 이 학교 진로상담교사인 미꼬 펠또니에미씨가 점심식사를 마친 후 띤야를 비롯한 8학년(우리나라 중2) 학생들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학교 전교생 650명 중 7~9학년에 해당하는 150명을 맡아 상담하는 펠또니에미 교사는 "7~9학년은 자신의 적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띤야처럼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학생들과는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학생 진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핀란드 교육의 열쇳말은 진로상담교사다. 교육법에 따라 학교당 1인 이상의 전문 진로상담교사가 7~9학년생을 집중적으로 상담하며 학생이 적성을 찾고 진로를 설계하는 데 조언자 역할을 한다. 핀란드 제2의 도시 탐페레에 있는 노리중등학교의 진로교육 절차를 보면 진로상담교사가 얼마나 치밀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재학생 250명의 노리중등학교는 한 학년을 8주씩 총 5학기로 나눈다. 7학년생은 1학기와 3학기 때 각각 75분 이상 진로상담교사에게 상담을 받아야 한다. 1학기 상담 때는 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안내하고 3학기 때는 언어 수학 과학 미술 기술 등 어떤 과목에 흥미가 있고 학생 취미나 적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한다. 2일 노리중등학교에서 만난 25년 경력의 진로상담교사 유까 부오리네씨는 "3학기 상담이 끝나면 학생 적성에 맞는 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새로 짠다"며 "흥미가 있는 과목을 더 듣게 함으로써 학생이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핀란드에서 과목별 교육목표는 교육당국이 정하지만, 교육과정 설계와 교수법은 각 학교와 교사에게 책임과 권한이 주어진다.

8학년은 4학기와 5학기 때 상담을 받아야 하는데 4학기 때 본격적인 진로탐색이 시작되고 5학기 상담 때는 어떤 직종과 기업의 직업체험이 적합할지를 조언한다. 9학년은 의무 상담횟수가 3회로 늘어난다. 1, 2학기 때 주로 직업체험이 이뤄지고 3학기 마지막 상담 때 일반고와 직업고 중 어느 곳에 진학할 것인지를 상담한다. 또 다른 진로상담교사인 에발레나 멜까스씨는 "학년 별로 정해진 상담을 받아야 하지만 시기는 조절이 가능하고 추가 상담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교과 개편으로 인해 남아돌게 된 교사를 진로상담교사로 전환한 우리나라와 달리 핀란드에서 상담교사는 전문성을 갖추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배출된다. 일단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5년 이상 대학 공부와 석사학위가 필수다. 여기에 대학 등에서 1년 간 60학점을 추가로 이수해야 진로상담교사가 될 수 있다. 월급은 일반 교사보다 조금 높다.

진로상담교사의 존재 못지 않게 핀란드식 체험 위주의 수업방식이 학생 진로 설계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동섭 탐페레대 교육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핀란드에서는 모든 초등학교에 목공, 재봉 등 관련 시설을 갖추고 수업시간에 배우도록 한다"며 "이런 체험위주의 학습은 학생의 호기심이나 창의력을 발달시켜 사고를 깊게 하고 진로 선택의 폭도 넓힌다"고 말했다.

헬싱키ㆍ탐페레(핀란드)=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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