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5일 하루 6시간 근무제' 도입한 지 3개월째…
세밀화로 유명한 보리출판사 대표, 베스트셀러 아동도서 기획자, 현대판 동의보감이라고 할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민족의학연구원의 산파. 그리고 거의 정년이 보장된 대학교수 자리를 버리고 농사꾼이 되어 만든 변산공동체. 벌여놓은 일이 하도 많아 다른 수식어들은 다 버리고 그냥 다들 농부철학자라고 부르는 사람.
윤구병(69)씨를, 먹을 만큼 먹고 알아서 돈 내는 그와 동료들의 또 다른 사업체이자 공동체 '문턱없는 밥집'(서울 서교동)에서 만났다. 빈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그는 적당히 유머를 섞어가며 인생, 교육, 노동, 생태 등 지금 한국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거침없이 풀어놓았다.
-보리출판사에서 최근 매일 6시간, 주 5일 3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습니다. 다른 출판사들은 불황이라고 야근까지 하며 책 만드는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제일 깁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하루 12시간 어떨 때는 15시간, 뭐 휴일, 일요일, 토요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면, 물론 아이들 교육비나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야근, 철야 할 수밖에 없지만, 따져보면 아버지가 아들의 직장을 빼앗는 겁니다. 아들을 실업자로 만드는 거죠.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정의를 말하면서 주로 분배의 정의만 이야기하는데, 건강한 생산이 없으면 건강한 분배도 없고 건강한 소비도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게을러야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이 게을러야 인명을 살상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해로운 것들의 생산이 줄어듭니다."
-공감이 가면서도 왠지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립니다.
"보리가 드디어 노동귀족을 만들어내는구나 하는 소리 듣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해요. 출판은 영세한 산업입니다. 출판하려면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디자인 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다 결합해야 하는데 가만히 보면 이들이 정말 비정규직이고 그거 아니면 살아갈 길이 막연한 분들입니다. 보리는 1988년에 설립해 2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만든 책 종류가 다른 출판사들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3,000부 팔릴 책 한 달에 한 권 만드는 것보다 열 달 걸려 3만부 팔 책 만들자는 식으로 해왔습니다."(출판사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뜨는 보리의 모토는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고리를 메우자, 남북한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이다.)
-6시간 근무 이후 여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중요할 텐데.
"지난 3월 도입해 시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우선 부정적인 것부터 말하면, 남자들에게는 재난입니다. 집에 일찍 가면 부인들이 얼씨구 하면서 가사노동에 마구 부려먹으니까요. 여자들은 여러 가지로 좋아합니다. 실제로 1930년대 미국 켈로그 등에서 도입한 6시간 근무제를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사람도 여성노동자들입니다. 어쨌든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가정에 더 충실해지고 지역사회에도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자기 삶의 시간이 늘어나니까 여러 가지 주체적이고 민주적인 공동생활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 기업주가 되더라도 임금 노동에 동원되는 시간은 자율적인 노동시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노예의식이 내면화합니다. 자율적인 사람들이 평등하게 모여야 그게 민주사회지요. 이대로 두었다가는 민주사회하고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변산공동체가 출범한지 17년 지났습니다. 철학 교수 하다가 왜 농부가 됐나요.
"제 얼굴을 자세히 보세요. 제가 교수처럼 생겼어요?(웃음) 완전히 똥 푸다 온 사람 같지 않아요? 제 얼굴이 대학 선생처럼 고아하게 안 珝攘嗤?나이 일흔인데도 행복해 보입니까, 아닙니까? 대학 선생 하다 농사 지은 건 뒤늦게나마 교수를 하면 나만 불행한 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예요. 만 15년 대학 선생 하면서 1995년에 변산으로 들어갔을 때, 그때는 제가 1년 동안 교양 교수로 서울대 철학과 석ㆍ박사 과정에서 존재론 강의를 했습니다. '있다-없다' '이다-아니다' 이것저것 할 때 '것', 이 다섯 마디로 1년을 강의했는데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요. '존재' '무'라는 말을 지난 일주일 동안 한번이라도 써본 적 있어요? 없잖아요. 그런데 대학에서는 그걸 존재론이라고 한단 말이죠. '있음'과 '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임'과 '아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 '저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와 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문제죠. 그렇게 계속해서 배워 버릇하니까, 가르쳐 버릇하니까 이상한 말들만 머리에 가득하게 돼요. 그래서 아이들도 행복하지 못하고 저도 행복하지 못하고. 그래서 때려치우자, 농사짓자, 그게 행복한 길이다 그렇게 생각한 거죠."
-그동안 뭐가 잘 됐고 뭐가 아쉬운가요.
"처음에는 어느 정도로 완결된 형태로 공동체가 갖추어지려면 30년 걸린다고 생각했어요. 공동체 젊은 식구들이 처녀총각으로 와서 눈이 맞고 배가 맞아서 애가 생겨나면 그 아이들이 거기서 자라서 공동체 학교에서 배우고, 더 넓은 세상 경험도 하고,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서, 거기서 짝을 맺어 아이가 생기는데 그만한 세월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어려운 것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상처받고 온 사람들이고 여러모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굉장히 예민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습니다."
-공동체 복원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공동체가 왜 중요합니까.
"가장 작은 공동체는 사실은 가족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가족 단위로만은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일정한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재능도, 취향도, 하고 싶은 일도 달라서 이것저것 해서 다른 이와 나누고 주고 받고 해서 사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공동체는 필수입니다. 떼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으니까. 공동체가 이루어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죠. 먼저 사람도 생명체니까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기초적으로는 의식주 문제이고 그 다음 교육이에요. 이건 손발 놀리고 몸 놀려야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또 하나는 서로 도와가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거예요. 이 두 가지 목표만 하면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거든요.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 서로 도와가면서 살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면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현대 도시에서 이 두 가지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나요? 자연까지 함께 생각하는 공동체 운동이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인류에 미래가 없어요."
-유기농을 고집하시는데, 유기농산물은 수요가 늘었지만 여전히 비싸 돈 없는 사람들은 못 먹는 거 같습니다.
"사실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음식 재료는 가장 싸야 맞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화학비료나 제초제나 농약 같은 것 쓰지 않고 햇볕과 바람과 비와 비옥한 토양으로 길러내는 거니까 돈이 안 들지 않습니까. 노동력만 충분하다면 유기농법은 돈 안 듭니다. 시골 젊은 사람들 동원해서 기름 때 가며 공장에서 비료 만들고, 대량살상무기 만들고 하는 바람에 일손이 부족하니까 유기농이 비싸져 버린 거예요. 유기농산물 비싼 건 농가 탓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바꿔놓은 돈, 권력의 힘 때문이지요."
-'문턱 없는 밥집' 형편은 어떻습니까.
"자급자족이 안 됩니다. 점심에는 유기농산물 비빔밥 한 그릇 먹고 밥값은 내고 싶은 대로 입구에 있는 통에 넣고 가면 돼요. 음식이 재료값만 5,000원이 넘는데 매일 계산해보면 1인당 2,000원 남짓 낸 걸로 나오더라고요. 사람들이 많이 오면 올수록 손해지요. 언젠가는 한 번 TV에 1,000원 내면 밥 먹을 수 있다고 소개돼 강남에서 외제차 타고 여자분 다섯이 왔는데 먹고 다해서 5,000원 내고 가더래요. 그러니까 사람 마음이 의외로 가난합니다."
-변산공동체 안에 학교도 운영하시는데, 요즘 교육 현실이 학교폭력 등으로 말이 아닙니다.
"현재의 제도교육은 교육이 아닙니다. 젊은 애들 수용해놓는 수용시설이고 감옥이나 마찬가지지요. 수학에 넌더리가 나는데도 그걸 한 시간씩 참고 견디며 들어야 하고, 음악 미술 체육이 좋은데 땡 하고 종 울리면 하던 걸 도중에 그만 둬야 하고. 이런 식의 교육이 더 지속돼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지 않으면 미국처럼 총기 들고 선생이고 친구들이고 다 쏴 죽여버리는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건 분노거든요. 자기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부모는 사랑의 이름으로, 교사는 교육의 이름으로 불필요한 통제를 가하는 데 대한 분노거든요.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해서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법, 그리고 꼭 필요한 통제는 자연이 부과하는 통제와 비슷한, 그 아이가 이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통제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없애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압니다. 만일 제가 제도교육의 총책이 된다면 방학을 겨울방학 두 달 여름방학 두 달로 늘리겠어요. 방학 동안 바닷가에, 산에 가서 실컷 놀라고 할 겁니다. 놀기만 하나요? 바다에 가서 게들은 어떻게 사나, 바지락은 어떻게 사나 그런 걸 보게 되고, 산에서는 산짐승도 보고 나무도 하고 하면서 산 살림에 눈을 키우게 됩니다. 지금 농촌이 노인네들이 일을 하니까 그렇게 힘 드는 거지, 젊은 애들 한 두 달 와서 일손 거들면 유기농도 굉장히 쉽게 지을 수 있거든요. 예산 안 듭니다. 거기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감기 걸려 죽는 애들보다 적을 겁니다. 자살하는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렇게 몸 놀리고 손발 놀리는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열에 하나, 아홉에 하나만 정신 노동을 하면 됐는데, 지금은 애들을 모두 도시로 끌어다가 학교에 집어넣고 머리만 굴리게 만들고 있어요. 머리 굴리는 시간은 3시간 이하로 줄이고 탈춤 추고 텃밭 가꾸고 목공일 시키고 그릇 빚고 천연염색하고 이런 시간들을 많이 주면 아이들 학교생활 즐거울 겁니다. 남을 해코지할 마음 가질 시간이 없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구조에서는 너무 비현실적인 말로 들립니다.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가 어떤 것인지 말씀 드릴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득이 없으면 죽잖아요. 소득이 돈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경제활동이란 건 온통 돈벌이 활동이지요.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열 중에 한 명은 정신노동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몸 놀리고 손발 놀려서 일하는 사람의 층이 두터울수록 그리고 거기서 현실감각을 익히는 사람이 두터울수록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고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삶의 조건들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결국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일 텐데요.
"최근 총선에 기대도 안 했지만 굉장히 실망한 게 있어요. 우선 국회의원 후보부터 당선자까지 실제로 몸 놀리고 손 놀려서 일하는 사람이 눈에 안 띄어요. 하나도. 아무리 좋은 사람도 너는 내 편이 아니니까 그러고 떨어뜨려 버린단 말이에요. 여야가 다 그렇게. 그런 독기를 품으면서 선거를 하는 거에요."(총선 개표가 있던 날 밤 그는 하도 가슴이 답답해 막걸리 두 통을 마신 뒤 맥주 2병에 소주 1병을 섞어 먹었다고 했다.)
-정신 활동보다 몸 활동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데, 뭘 먹고 어떻게 사십니까.
"변산에 가기 전에는 제가 걸어다니는 병원이었어요. 당뇨, 갑상선 뭐 B형 간염 해가지고 엉망이었거든요. 그런데 변산에서 15년 사는 동안 병원 한 번 안 갔어요. 처음엔 식사량을 3분의 1로 줄이고 대신 먹는 시간을 5배로 늘렸어요. 그렇게 해서 공복증을 없애는 데 3년 걸렸습니다. 변산에서는 5끼를 먹습니다. 새참 두 번하고 아침 점심 저녁 해서. 담배는 변산공동체 초창기 어려울 때 담배 살 돈이 궁해서 끊었다가 1년 반쯤 전부터 다시 피웁니다. 오늘 죽어도 자연사인데 취미생활은 하자 뭐 그런 겁니다. 술은 자제해서 1년에 한 나흘 안 마십니다.(웃음)"
-가족은 변산에 같이 안 사시나요.
"각시도 있고 새끼도 있는데, 삶의 길이 달라요. 아들은 지금 대기업에서 일중독이 돼 가지고 휴일도 없이 철야하고 사우나에 가서 서너 시간 자고 가서 일을 해요. 그래서 월급 많이 받아 며느리한테 갖다 주는 것 같은데 며느리는 행복해하지 않아요. 애들도 투덜거리고. 제가 완전히 까막눈으로 농사꾼으로 살았으면, 거기서 아이들 태어났으면 자연의 아이로 자랐을 텐데 이 아이들은 실제로는 손발 놀리는 일을 일절 해보지 않아 힘들어해요. 그리고 애 엄마도 도시내기인데 관절이 몹시 나빠요. 변산에 몇 번 와서 밭머리 엎드려서 일하더니 죽을 것 같다고, 시골에서 살 수가 없겠다고 해서 저만 달랑 이렇게…. 애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내 욕심 때문에 온갖 스트레스, 타율적인 통제 속에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자라게 만들었다고 후회해요."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이윤주기자 mislee@hk.co.kr
이다연 인턴기자(서강대 국어국문 4)
■ 5無농법으로 100여종 작물 농사… 내년부터 기초살림대학 운영
변산공동체는 어디서 "공동체 만들어 살고 싶다"고 한 윤구병씨의 말을 들은 한 젊은이가 하도 졸라대서 만들었다고 한다. "자기집 팔았다며 그 돈을 나에게 보낼 테니 농사지을 땅을 사서 시골로 들어가자고 숫제 협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한 땅이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다.
변산은 지리적으로 산을 뒤로 해 들이 펼쳐지고 그 앞에 바다가 열린 곳이다. 산살림, 논밭살림, 갯살림을 다 할 수 있다. 공동체가 열리자 누구라도 와서 3박 4일이나 한 달 정도 체험을 하고 갈 수 있는 그곳에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금은 7,000평 정도 논과 8,000평 정도 밭에서 함께 일하고 한솥밥 먹는 식구가 60명쯤 된다. 변산공동체의 일원이었다가 공동체 주변에 독립해 살고 있는 사람까지 더하면 100명을 넘는다.
농약 안 치고 제초제 안 쓰고 화학비료 안 주는 데다 퇴비도 직접 만들어 쓰고 비닐 멀칭 설치 안 하는 '5무(無) 농법'으로 지은 농산물은 공동체에서 먹고 회원 택배 방식으로 판매한다. 논과 밭에서는 100여 종의 작물을 심어 거두고 산과 들에서 나는 40여 종의 풀을 뜯어 담가 효소도 만든다.
변산공동체의 하루는 여느 농가처럼 새벽부터 시작된다. 여름에는 5시 반에 일어나 아침 식사 전 논, 밭일이라든지 작업을 1시간 남짓 한 뒤 다함께 모여 아침을 챙겨 먹고 오전 작업에 나선다.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다시 오후 작업을 시작해 대개 6시 정도에 마무리한다. 7시에 저녁을 먹고 작업회의를 하면 하루가 끝난다. 처음에는 빈집에서 적당히 살았지만 사람이 늘면서 흙벽돌을 찍어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딸린 집 짓기 바빠졌다.
변산공동체에는 중고 기숙 학교가 있다. 오전에는 정보교육으로 국어, 철학, 수학 같은 것을 배우고 오후에는 기초살림교육으로 공예, 텃밭 일구기, 옷감 물들이기, 갯살림 등을 익힌다. 그렇게 배우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자연스레 생긴다고 한다. 대학에 가고 싶으면 1년 준비를 해서 간다. 내년에는 공동체 안에 '기초살림대학'이라는 대학 과정도 운영할 계획이다. 윤씨는 "2년제로 산살림, 갯살림, 바다살림을 가르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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