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탈세 수완은 한창 때의 사업 수완 못지 않았다. 다른 고액체납자들의 탈세 행태도 치밀했다.
8일 국세청에 따르면 정 회장은 서울 장지동 토지 환매권 탈세 시도 외에도 요지의 상속 받은 땅 5,000㎡ 가량을 무려 26년간 상속등기를 하지 않는 수법으로 은닉해 세금 추징을 피해왔다.
하지만 정씨의 탈세 행각은 옛 토지거래 내역을 모두 확보한 국세청 '숨긴재산 무한추적팀'의 끈질긴 조사 끝에 실체를 드러냈다. 양병수 국세청 징세과장은 "무한추적팀이 정씨 명의로 이뤄진 1,000여건의 부동산 거래내역을 모두 추적해 26년간 숨겨온 180억원대 토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2월 말 출범한 국세청 무한추적팀은 최근 두 달간 정 회장을 비롯한 고액체납자들에게서 총 3,938억원의 체납세금을 징수했다. 이 중에는 가족이나 종업원 이름으로 재산을 숨겨놓고 호화생활을 해온 자산가와 비리사학 소유주 등의 체납세금 1,159억원도 포함됐다.
163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전 대기업 사주 A씨는 배우자 명의 고급빌라에 거주하며 유령회사를 통해 비상장 국내법인을 사실상 지배해왔다. 본인 명의 재산이 없으면서 외국을 자주 드나드는 점을 눈여겨본 국세청은 관련 법인의 주주현황과 정보수집을 통해 A씨가 조세회피지역에 설립한 유령회사 명의로 1,000억원 상당의 국내법인 주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 해당 주식을 압류하고 공매절차를 밟고 있다.
수십 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사학재단 이사장 B씨는 양도성예금증서(CD)로 체납추적을 피하려다 무한추적팀에 꼬리를 잡혀 16억원을 추징당했다. B씨는 재단 비리에 연루돼 사학재단 운영권을 넘긴 뒤 그 대가로 수십 억원의 현금으로 받았다. 이후 무기명 CD를 이용해70여 차례 입출금을 반복하며 자금을 세탁한 뒤 자녀 명의 CD와 고가아파트를 매입했다. 국세청은 세금 추징과 함께 B씨를 검찰에 고발하고 거액의 증여세도 별도 부과했다.
김덕중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무한추적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체납자에 대한 추적조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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