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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올랑드, 사르코지는 이겼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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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올랑드, 사르코지는 이겼어도…

입력
2012.05.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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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7년5월 우리나라는 노무현정부가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우파인 사르코지 후보가 좌파 루아얄 후보를 누르자 프랑스 국민들보다 더 기뻐한 건 우리나라의 일부 보수그룹이었다.

이들은 자주보다 친미, 분배보다 성장, 증세보다 감세를 강조한 사르코지의 승리를 '보수시대의 도래'로 해석하는 데 분주했다. 자주와 분배 쪽에 기울어 있던 노무현정부에 대해 '유럽을 봐라. 당신들 세상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파 대세론'을 연말 대통령 선거까지 끌고 가려 했다. 심지어 당시 유력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같은 보수의 기치를 내건 정신적 동지'라며 축하 메시지까지 보냈다.

만약 프랑스인들이 자기 나라 선거결과에 이토록 열광하는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봤다면 뭐라 했을지 모르겠다. 프랑스 보수주의자들도 과연 한국의 우파에 대해 정신적 동지애를 느꼈을지 궁금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보수의 축복 속에 집권했던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 6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프랑스와 올랑드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프랑스 좌파로선 무려 17년 만의 정권탈환이다. 5년 전 사르코지 대통령을 '동지'라 불렀던 우리나라 일부 우파들은 지금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 행여 이번엔 좌파 그룹이 '우파시대의 종말'이라고 환호성을 외치며 올랑드 당선자를 '동지'라 칭하지는 않을는지. 또 한번 그런 코미디를 보지 않게 돼 다행일 따름이다.

사실 이번 사르코지의 낙선은 결단코 우파의 패배가 아니다. 집권세력의 패배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올랑드의 당선 또한 좌파의 승리 아닌 야당의 승리이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잣대가 작용된 것이 아니라, 한국식 정치언어로 표현하자면 야당세력의 '정권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 먹힌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프랑스만 그런 게 아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유럽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유럽 각국의 선거 결과는 항상 집권세력 패배로 끝났다. 하기야 경제가 저 모양이 됐는데 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제 세계 경제의 관심은 올랑드 후보 아닌 올랑드 대통령에게 쏠린다. 과연 공약대로 긴축재정을 거부하고, 다시 말해 재정긴축을 전제로 한 기존의 유럽재정위기 해법(신재정협약)을 부정하고 독자적인 경기회생 프로그램을 실행할 지 여부다. 고액소득자에 대한 대폭적인 세율인상,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과세강화 등 '좌파본색'을 끝까지 밀고 나갈지도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잠깐 1997~98년의 한국 상황을 생각해보자. 만약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민생 경제가 철저히 파괴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당시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김대중정부의 탄생도 진보의 승리가 아니라 집권세력의 패배였다고 생각한다.

후보시절엔 올랑드 당선자처럼 'IMF 재협상'까지 거론했던 김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집권 후엔 IMF의 요구를 가장 잘 수용했고 이행했다. 그건 갑자기 우파로 돌변해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생사여탈권을 쥔 월스트리트(국제금융시장)로부터 OK를 받으려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랑드 당선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로존은 지금 이미 깨졌어야 할 유리그릇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신재정협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리스 스페인은 디폴트로 내몰릴 것이고, 유럽국가 가운데 이들 나라에 가장 많은 돈을 꿔준 프랑스 은행들이 가장 먼저 휘청거릴 것이다. 국가신용등급 추락은 거의 예정된 수순. 성장률은 곤두박질치고 실업은 늘어나면서 결국 올랑드 정부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 뻔하다. 올랑드의 구상을 설령 메르켈(독일총리)이 용인한다 해도, 국제금융시장이 받아들일 리 없다.

좌파는 우파를 누를 수 있고, 우파도 좌파를 격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좌든 우든 절대로 시장은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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