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 엉망이다. 서로를 오해한 배우들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무대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가뜩이나 복잡한 동선이 꼬일 대로 꼬였다. 그런데 웬걸, 객석엔 웃음이 넘쳐난다. '빈집 대소동'이라는 연극에 출연 중인 배우와 스태프의 소동극인 '노이즈 오프'는 배우들의 의도된 실수가 웃음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슬랩스틱 코미디다. 4일 개막했고 6월 10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계속된다.
'노이즈 오프'의 로저 역을 맡은 배우 겸 연출가인 백원길(40)에게 개막 초기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소감을 물었다. "이게 다 내가 콤플렉스가 많은 덕분"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콤플렉스가 많은 캐릭터가 영악하게 행동하려 애쓸 때 귀여워 보이잖아요. 저는 그 모습에서 좋은 코미디를 발견해요. 그런 점에서 제가 가진 외모, 학력, 지식 콤플렉스가 도움이 되죠."
영국 극작가 마이클 프레인이 쓴 '노이즈 오프'는 2006년 국내 초연, 2007년 재공연에 이어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배우들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돋보이는 연극으로 말장난에 가까운 언어유희가 주가 되는 요즘 대학로 주류 코미디와는 차이가 있다. 그는 "재치가 아닌 우스갯소리로 채운 연극이 젊은 감각으로 여겨지는 요즘 풍토가 안타깝다"고 했다. "개그는 주변 내 친구들도 잘 하잖아요. 그걸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할까요. 저는 코미디로도 감동을 전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는 해외에서도 호평 받은 '보이첵' 등 신체극으로 유명한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소속이다. 인간애가 돋보이는 희극 '휴먼코메디' 등에 출연했고 비언어극 '점프' '브레이크 아웃' '비밥'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연극배우인 그에게 '노이즈 오프'는 벼르고 별렀던 작품이다. 초연 때부터 참여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국에 '점프' '브레이크 아웃' 초청 공연을 갈 때마다 '노이즈 오프' 포스터가 걸려 있어 언젠가는 꼭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실제 출연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는데 결국 저보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캐스팅 되더군요." 곡절 끝에 연출까지 맡게 된 이번 무대는 그의 손길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우선 젊은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전보다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 늘 노배우가 맡았던 도둑 역할을 움직임 좋은 젊은 배우에게 맡겨 의외의 웃음 포인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간 연극만 고집하던 그는 최근 생각을 바꿔 '무신' 등 TV드라마와 영화에도 간간이 출연하고 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에서 실험적인 공연을 주로 하다 대중적인 연극과 매체 연기를 병행하면서 이게 저뿐만 아니라 극단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같은 극단에 있다 요즘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고창석 형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는 "눈물이 나는 웃음 연기"를 하는 게 꿈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코미디도 정말 재미있지만 그렇게 웃고 나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죠. 배우의 행동이 어리숙해 웃음이 나도 내용에는 인생의 고민이 들어 있는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배우도 관객도 함께 울면서 웃게 되는 그 순간 때문에 제게는 연극이 마약처럼 끊기 힘든 일이죠.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을 아직 찾지 못해 이렇게 연극에 매달려 있네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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