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짜리 크로마틱(반음) 하모니카가 빚어낸 마술이었다. 전 악장 연주가 끝나야 박수를 치는 일반 클래식 공연의 관행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매 악장마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전제덕의 심포닉 하모니카'는 가요, 재즈에서 익히 알려진 그의 하모니카가 클래식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우리 클래식의 지평이 확장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브라질풍의 바흐'로 친숙한 작곡가 빌라로보스의 숨겨진 명곡 '하모니카 콘체르토'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빛을 본 것이다. "대체 누가 듣겠느냐"며 회의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던 주최측(CBS)에 "정규 협주곡에 걸맞은 2~3악장 형식의 곡이어야 한다"며 버틴 전씨가 압승을 거둔 형국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호사가적일까? 이날 무대에 함께한 모스틀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박상현씨는 무수한 커튼 콜에 화답해 시각장애인인 전씨의 손을 잡고 드나 들기를 자청했다.
'하모니카 콘체르토' 연주는 전씨가 8년 전부터 꿈꿨던 일이다. "2004년 첫 음반 '전제덕'을 내면서 알게 된 곡이에요. 언젠가 실현하겠다, 결심했죠." 미끄럼음(slur), 트레몰로, 겹음 등 오르간을 넘보는 기교로 요염, 능청, 수다 등 그가 뽑아낸 하모니카의 최대치는 3악장에서 구현됐다. 빠르고 웅장한 이 대목에서 하모니카로 구사한 비바체의 선율은 언어도단의 경지였다. 건반으로도 힘들 악구를 구사하던 그는 오케스트라 반주가 딱 멈춘 마지막 대목, 하모니카 솔로로 그 넓은 콘서트홀을 채워 나갔다. 난사되던 음이 멈춘 그 자리, 숨 멈추고 있던 객석은 환호를 터뜨렸다. 겸연쩍게 웃으며 전제덕이 함께 박수를 쳤다. 검은 안경 뒤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으리라.
"하모니카 시작하고 별의별 음반 다 모았어요. 올 초 CBS의 한 PD가 이 곡 협연을 제안해 깜짝 놀랐어요. (무대화를)결심하는 데 며칠 걸렸어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 곡을 마음 속에 담아뒀던 전씨는 "1989년 미국 하모니카 주자 로버트 빈필리오의 연주, 1993년 캐나다 주자 타미 레일리의 것, 이 둘을 계속 들으며 비교 분석해 두고 있었다"고 했다. 즉흥의 비중이 큰 레일리 버전에 최종 낙점이 찍혔다.
나아가 이번 무대는 전씨에게 탈각의 자리였나 보다. "하다 보니 진짜 공부할 만한 가치 있다 느꼈어요. 화려한 연주로 독불장군 되는 재즈가 아닌 하모니 앙상블의 중요성 말이에요." 그는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자주 하고 싶다"며 "현대 음악도 그 중 하나"라고 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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