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생근은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는 굳센 인문주의자이자 어떤 리얼리즘 주장자들보다도 더욱 치열한 현실주의자이다."(문학평론가 성민엽)
"황현산만큼 텍스트를 풍요롭게 해명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부정의 정신을 통해 도달하는 순결하고 무한한 언어를 추구한다."(문학평론가 권혁웅)
오직 문학적 성취만을 고려하는 엄정한 심사로 1989년 제정 이래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 받아온 팔봉비평문학상이 각자 독보적인 비평 세계를 구축한 두 중진을 한꺼번에 수상자로 선정하는 경사를 맞았다. 황현산과 오생근. 각자의 문학적 지향을 함축한 첫 평론집 제목( )이 암시하듯 관점과 스타일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비평 활동을 펼쳐온 거목들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도 적지 않다. 같은 학번(65학번)의 동년배이고, 불문학자로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 섰다가 최근 정년을 맞았다. 수상자 인터뷰에 함께 한 이들의 당당한 풍채는 말 그대로 '큰 나무'를 연상시켰다. 이들이 수상 소감을 밝힐 때 초대 수상자인 선배 비평가 김현(1942~1990)을 나란히 언급했음도 기록해둬야겠다.(황씨는 김현에 대한 추모 비평을 발표하며 평론을 시작했고, 오씨는 김현과 더불어 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 활동했다.)
_수상 소감은.
황="병상에서 이 상을 받은 김현이 시상식 때 대독한 수상 소감에서 '문학의 뜨거움'을 말했던 기억이 난다.(김현은 "문학은 그 어떤 예술보다도 더 뜨겁게 인간의 모든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팔봉은 문학비평을 창작 이상으로 삶과 밀착시켜 비평을 뜨겁게 만들었다. 팔봉의 이름으로 존경하는 김현, 오생근 선생과 더불어 수상하게 돼 영광이다."
오="나 또한 그렇다. 팔봉비평상은 비평 장르에 국한해서 주기 때문에 모든 비평가들이 바라는 상이다. 김현을 비롯해 우리 시대에 비평가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온 이들을 시상한 전통 있는 상을 받게 돼서 기쁘다."
_비평가로서 주된 관심과 중시하는 덕목은.
황="가장 관심이 큰 것은 시다. 10년 만에 비평집(수상작)을 내려 원고를 정리하다 보니 소설 비평은 10편 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냥 뺐다. 시를 읽으면 메마르고 고된 삶이 어떤 순간에 시적 상태로 변하는가를 알게 되고 다른 삶이 아주 가까이 와 있는 듯한 높은 교감을 얻게 된다. 삶이라는 작은 차원에 갇혀 있던 인간이 어떻게 하면 존재 내부의 수많은 차원을 발휘할 수 있는가, 거기서 언어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시 비평을 통해 세밀하게 밝히려 해왔다."
오="이상의 소설에 관한 비평으로 데뷔해서인지 한동안 소설 비평을 주로 해왔다. 시 비평을 하고 싶어도 기회를 주지 않더라.(웃음) 등단한 지 15년쯤 지나 시 비평을 발표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럭저럭 골고루 쓰게 됐다. 나는 시든 소설이든 그 시대의 문학으로서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절실하게 보이는 작가를 중시하고 높이 평가한다. 요즘의 난해시를 예로 들자면 이것이 단순한 언어유희인지, 진지한 문학적 모험의 감행인지를 가려야 한다.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것이 비평가의 임무다."
_프랑스문학을 전공한 학문적 배경이 비평에 준 영향은.
오="대학 다닐 때 프랑스 현대시 수업은 19세기 상징주의에서 그쳤다. 그러다 엘뤼아르(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를 알게 되면서 20세기 프랑스 현대시를 접했고, 시가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엘뤼아르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면서 관심사가 초현실주의 문학으로 발전했고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현실주의는 문학이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런 역할을 못할 때 문학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초현실주의 정신, 이념ㆍ풍조에 물들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세가 온전한 문학정신이라고 본다."
황="석ㆍ박사 논문 모두 아폴리네르를 주제로 썼다.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연결시키는 시인이다. 내가 가장 많이 공부한 시인은 보들레르로, 그의 전집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관심을 갖는 시인들은, 우연인지 몰라도, 대부분 번역가(네르발, 보들레르, 말라르메)이거나 이중언어 사용자(아폴리네르)다. 이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면서, 언어의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어떻게 시적 언어가 만들어지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게 얻게 된 언어적 감각과 지식이 한국문학 비평에 도움이 된 것 같다."
_한국문학 위기론을 어떻게 보나.
오="위기는 풍요와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나 문학잡지, 문학상이 넘쳐나고 지하철역에서도 시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이런 가운데 문학의 위기가 더 깊어지고 있다. 우리 때와 비교할 때 성장기에 문학이 미치는 영향이 현저하게 줄었고, 문학 종사자들의 열정이나 의식도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위기에 대처한다며 작가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품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전통적으로 있어왔던 문학정신과 언어의 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황="문학이 특별히 우리 시대에 크나큰 위기를 겪는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학이 위기라면 다른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정치 영역에서 권력이 분산되는 식으로. 물론 비평가도 대중 독자를 거느렸던 예전에 비한다면 문학 독자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영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시, 소설을 누군가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예컨대 드라마 작가, 카피라이터 같은 이들. 전파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지, 문학은 여전히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닐까."
_비평 작업은 즐거운가.
황="전혀. 확신을 갖고 글 쓰는 것도 아니고, 단어 하나하나에 고민이 많다. 마감 때문에 글을 빨리 줘야 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거나 표현이 막힐 때는 지나가는 노숙자만 봐도 부러울 지경이다. 저 사람은 글은 안 쓸 텐데 하면서.(웃음) 대신 작가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작은 낙원 같아서 대화하고 교감하며 큰 행복을 얻는다."
오="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한달까. 쓰다 보면 앞에 쓴 것이 미흡해 보여 다시 고치는 경우가 많다. 시작할 때는 막막하지만, 그렇게 고쳐 쓰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느낌이 들고 다 쓴 뒤엔 나름의 만족감을 느낀다. 요즘도 막막할 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암담한 방법이긴 한데(웃음), 막연한 낙관주의로 비평에 임하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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