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마지막 성역이었던 민족주의의 굳건한 토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한편으로는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이 배출될 정도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곳곳에서 갈등의 파열음이 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의 글은 의미 있고 시의적으로 적절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제시로 인식 변화와 정부 정책을 동시에 주문한 것도 적절했고 서술 능력, 논리 전개력에 있어서도 뛰어난 수준을 갖추고 있어 고등학교 2학년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운 솜씨를 보이고 있다. 내용과 형식이 모두 맞아떨어져 흠잡을 데 없이 잘 쓰여진 글이다. 수정할 부분이 별로 없지만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덧붙여 보겠다.
먼저 결혼 이주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에 대해 대책을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의식을 이주민 차별이나 다문화 교육에 국한시키기보다 더 심층적인 고민으로 심화시키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이주민 차별은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연원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도권 교육을 통해 어려서부터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학습하고 그것에 대단한 긍지를 느끼도록 주입받아 왔다. 우리 모두가 단군의 자손이라는 주장은 그 한 전형이다. 비록 일부라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주민이나 그들의 자녀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정서적 근거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소수라는 것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되고 그 존재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이주민들을 배제하고 타자화하기 위한 안성맞춤의 기준과 구실을 제공한다. 민족주의가 우리 안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 차별 문제를 다루면서 파고들어야 할 주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개념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우리는 같은 외국인이나 이주민이라도 피부색이나 언어에 따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호의적이면서 유색인에게는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엄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차별에도 차별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주민이나 이주민 자녀들에 대한 차별과 불관용 문제는 사실 이 오리엔탈리즘적 시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국의 유색인종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인들이 정작 자국에서 백인을 우대하고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은 그 배후에 이런 편견이 뿌리 깊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이주민 가정 출신이라고 해도 피부색에 따라 전혀 다른 처지와 입장에 놓이게 되는데 학생이 평소 시사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런 비판 지점을 잘 짚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학생의 글이 강조하는 갈등 해소와 다문화 사회를 위한 교육은 다소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안 제시가 다소 추상적인 편이므로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방안을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해결책으로 인식 개선과 정책적 차원을 분리해서 생각한 점은 적절하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성과 현실성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령 정부 정책을 촉구할 때는 미국처럼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을 도입하는 등의 제도적 접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생은 대학을 나온 이주민 여성들은 전문성이 있으니 정부가 직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선의로 평가해도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대학을 나왔으니 전문성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것은 학력을 매개로 한 또 하나의 차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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