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 축구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비참한 처지에 몰린다. 일본과의 4차전에서 0-1로 패배한 한국은 북한과의 최종전에서 두 골 차 이상으로 이기고 이라크가 일본과 비기거나 이겨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상황은 암담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은 북한을 3-0으로 꺾었고 이라크는 1-2로 뒤진 후반 추가 시간 동점골을 넣으면서 일본과 2-2로 비겼다. 한국은 일본과 2승2무1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득실에서 앞서며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른바 '도하의 기적'이다.
2011~1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최종 라운드 만을 남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처지가 93년 10월 한국 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력 우승은 이미 물 건너 갔다. 기적적인 뒤집기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맨유는 지난 1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의 36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배, 2위로 밀려났다. 승점은 같지만 득실에서 밀린다(8골차). 맨유는 37라운드에서 5위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맨시티를 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맨시티는 6일 밤(이하 한국시간) 적지에서 2-0 완승을 거뒀다. 맨유도 7일 오전 홈에서 스완지시티를 2-0으로 꺾었지만 여전히 2위에 머물고 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맨시티의 최종전(13일 밤 11시ㆍ이티하드스타디움) 상대는 17위에 머물고 있는 퀸스파크레인저스(QPR). 객관적인 전력에서 QPR은 맨시티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게다가 맨시티는 올 시즌 홈에서 열린 EPL 경기에서 17승1무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QPR은 원정에서 3승 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고 했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의 '지푸라기'는 QPR을 이끌고 있는 제자 마크 휴즈 감독이다. 그는 7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희망은 남아 있다. QPR은 EPL 잔류를 위해 승점이 필요하다. 게다가 맨시티는 휴즈 감독을 2009년 12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한 전력이 있다"며 '기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맨유가 선덜랜드와의 원정 최종전에서 승리하고 QPR이 맨시티와 비기거나 이기면 '기적'은 완성된다. 천하의 퍼거슨 감독이 QPR에 의지해 뒤집기를 바라는 구차함을 무릅쓰고 우승을 바라고 있다. 비굴하지만 이유는 있다. 맨유가 EPL 우승을 놓친다면 2011~12 시즌은 퍼거슨 감독 취임 이후 최악의 시즌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2004~05 시즌 이후 7년 만에 무관에 그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맨유는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해 유로파리그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8강전에서 아틀레틱 빌바오(스페인)에 완패했다. 지난해 10월 안방에서 맨시티에 1-6으로 참패하는 망신을 당했고, 우승이 걸린 원정 경기에서도 0-1로 졌다.
휴즈 QPR 감독은 1988~95년 맨유에서 퍼거슨 감독 휘하에 있었다.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였다. 특히 큰 경기에 강했다. 휴즈가 옛 스승에 '기적'을 선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맨유가 기적의 우승을 차지할 경우 이청용이 복귀한 볼턴은 2부 리그로 강등된다. 득실에서 크게 뒤져 있는 볼턴이 강등권을 탈출하는 방법은 QPR이 맨시티에 패배하고 스토크시티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하는 길뿐 이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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