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온 외국인 유학생들이 국내에서 지출한 비용은 약 645억원. 반면 한국 학생이 해외 유학이나 연수에 쓴 돈은 무려 5조942억원에 달했다. 유학ㆍ연수와 관련해 나간 돈이 들어온 돈의 80배 수준이며, 적자 규모는 5조297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서비스 수지 적자 규모가 4조9,88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자의 원인이 순전히 해외 유학과 연수 때문인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제주에 영어교육특구 성격의 대규모 영어전용타운 조성이 추진됐다. 영어로 수업을 받고 생활할 수 있는 도시를 제주도에 만들어 영어 교육을 위해 무조건 해외로 나가려는 유학ㆍ연수 수요를 국내에서 흡수, 외화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영어전용타운은 제주영어교육도시로 명칭이 바뀌었고, 핵심 사업인 국제학교 2곳이 문을 열었다.
영미 명문학교를 제주에서
지난해 9월 제주영어교육도시에는 영국의 노스 런던 컬리지잇 스쿨(NLCS)의 분교인 NLCS 제주와, 미국 서부교육연합회(WASC)의 규정에 따라 미국 정규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한국국제학교(KIS)가 문을 열었다.
NLCS 제주는 NLCS의 첫 해외캠퍼스로 유치원부터 초중고교(R~13학년)까지 영국식 학제로 운영된다. 현재 1학년(초1)부터 11학년(고1)까지 435명이 재학 중이며 65명의 교사가 근무하고 있다. 교사의 74%는 영국에서 파견된 원어민 교사들이다.
제주도교육청이 설립해 YBM 시사가 위탁 운영하고 있는 KIS에는 초중학교 과정 학생 369명이 60명의 교사들에게 배우고 있다. 국어와 사회를 가르치는 한국인 교사 9명을 제외하면 모두 외국인 교사들이며 교사들의 40% 이상이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다. KIS는 미국 대학 교양과목 선이수제(AP)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대학은 AP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준다.
제주영어교육도시에는 올해 10월 세번째 국제학교로 캐나다 토론토의 명문 여자사립학교인 브랭섬홀 아시아가 개교한다. 유치원~12학년 과정 1,200명(교사 15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국내 외국인 학교는 한국 학생의 경우 3년 이상 해외에서 거주해야 입학 자격을 준다. 인천 대구 등의 국제학교는 정원의 30%까지 한국 학생이 입학할 수 있지만 제주의 국제학교는 정원의 100%까지 한국 학생의 입학이 가능하다.
엄격한 학사관리와 우수한 예체능
지난달 26일 제주 서귀포시 NLCS 제주 캠퍼스에서 만난 11학년(고1) 방찬우(17)군은 "시설과 교육과정이 모두 마음에 든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경기 과천시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KLCS에 입학한 방군은 "모든 수업이 토론식이며 영어로 진행돼 다소 어려울 때가 있지만 선생님들이 워낙 꼼꼼하게 챙겨줘 많은 도움이 된다.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선생님들과 개인적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질문한 사항에 대해 끝까지 해결을 해줘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NLCS 관계자는 "신입생 선발 때 인지력 검사(렉슬러 테스트)와 함께 영어 회화 능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총 정원이 1,508명으로 재학생 충원율(29%)은 낮은 편이지만 학생들의 질 관리를 위해 영어가 부족한 학생들은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NLCS는 학년별로 수시모집을 하고 있다.
NLCS 재학생들은 정규 수업 후에는 축구, 수영, 오케스트라, 무용 등 각종 예체능 클럽 활동을 하고,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개최한다. 사이먼 베네스 교사는 "학생들이 재학 중 한번 이상 예술 공연 제작에 참여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술적 성장은 물론이고, 협업과 우정 등 인성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NLCS에선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밤 11시 이후에는 취침을 해야한다. 주중 외출은 금지돼 있다.
외국인 학생 비율은 낮아
제주의 국제학교들은 교사 1인당 학생수가 10명 미만에 도서관, 기숙사, 강의실, 실험실 등 최신식 시설을 갖춰 우수한 교육 여건을 자랑하지만 비싼 학비가 문제로 지적된다. NLCS는 연간 학비가 4,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치원~초등학교는 연간 4,200만원이며 11학년(고1)은 4,765만원에 달한다.
제주도교육청이 설립한 공립학교인 KIS도 기숙사비를 포함해 연간 학비가 3,370만~3,420만원 수준이다. 브랭섬홀 아시아는 학년에 따라 2,325만~5,325만원의 학비를 책정하고 있다.
내국인 학생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 국제학교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KIS는 외국인 학생 숫자가 5명, NLCS는 33명에 불과해 대부분 한국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
양성언 제주도교육감은 "국제학교 설립 심의과정에서 납부금 수준을 최대한 낮추려고 노력하지만 본교 학비도 그 수준이어서 낮추기가 여의치 않다. 국제학교 설립 취지가 조기유학생의 탈선과 기러기 아빠 등을 양산하는 해외유학 수요 흡수에 있는 만큼 국내 타학교와의 비교보다는 해외 ?克澍諛?비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육감은 "국제학교의 교육적 성과가 나타나면 중국 홍콩 등에서 지원자들이 몰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명실상부한 국제학교로서의 면모가 갖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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