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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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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26>

입력
2012.05.0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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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놀라서 일어나자마자 나를 와락 껴안고는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가시나무에 가시 난다더니, 우리 팔자가 왜 이러냐.

나는 엄마를 뿌리치고는 다시 묻는데 엄마는 내 무릎에 엎어졌다.

세상 문을 열자마자 가버렸단다.

아기는 나올 때부터 숨을 쉬지 못했다는데 오죽했으면 안 서방 댁이 코를 빨기도 하고 거꾸로 들어 궁둥이를 때렸는데도 그냥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의원에게 달려가 보였더니 이미 숨이 멎어서 그 작은 몸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엄마는 처음엔 입을 다물었지만 몇 달이 지나서야 안 서방과 함께 우리 객점에서 지척에 있는 채운산 기슭에다 애장했다고 말했다. 나도 거기 가보았고 애장 묘에 비석이나 봉분을 쓰는 법이 아니라서, 강변에 내려가 예쁜 자갈돌을 한 바구니 주어다 흙이 보이지 않게 촘촘히 덮어주었다. 여름 한 철을 넋 나간 듯이 뒤채 윗방에 틀어박혀서 보냈고 날이 갈수록 신통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아기라도 곁에 있었다면 까짓 웬수는 잊고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안 서방은 추석 대목을 바라고 무시로 잡물을 걷어올 겸 김장이며 장 담글 철이 오기 전에 산간에 어염을 낸다고, 곁꾼 세 사람과 더불어 금산, 무주, 영동, 옥천을 한 바퀴 돌아왔다. 말 짐에 그득 실어온 잡물을 창고에 모두 넣고 나서 안 서방은 윗방의 나를 찾았다.

이번에 이 서방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그래, 거기가 어디요?

무주 장에서 도가를 정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참빗이며 소쿠리 채반 등속을 넘기러 왔습디다. 첨엔 서로 모르고 있다가 거래가 끝난 뒤에 장터 목롯집에서 술 한잔 나누다 보니, 갑오년 난리 얘기가 나왔구요, 그 사람이 호서 민병을 따라 공주 이안 역 싸움터까지 갔다더군요. 나도 공주 갔던 얘기가 나오고 그예 그 사람 집까지 따라가서 하룻밤 자구 나왔습니다.

이 서방이 지금 어디 있답디까?

내가 참지 못하여 재촉하자 안 서방은 기다리라는 듯이 손을 펴서 위아래로 흔드는 것이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이신통이라는 이름도 알고 이신이라는 본 이름도 알고 있습디다.

아주 잘 아는 사람이구려.

그렇습죠. 말은 않지마는 오랜 도인이 분명합디다. 그 사람 말이 바로 두어 달 전에 자기네 집에서 묵고 갔답니다. 그러고는 덕유산 거칠봉에 올라간다 하고는 다시 들르지 않았다니 십중팔구 아직 산 속에 있을 겁니다.

안 서방이 말하자마자 명치에서부터 아랫배로 초조한 안달이 일어나 나는 부녀자답게 얌전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벌떡 일어나 기다란 방의 아랫목 윗목을 서성거렸다. 안 서방이 자기도 엉거주춤 일어서며 내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가시렵니까?

이제 곧 추석인데 또 어디론가 달아나기 전에 쫓아가야죠.

안 서방은 껄껄 웃고는 다시 손짓으로 누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제발 좀 앉으시지요. 그 사람 말로는 무주를 떠날 때에 자기 집을 꼭 들른다고 하였으니 우리와 어긋난다 하여도 행방을 알아놓거나, 강경 집에서 찾고 있다는 말을 전할 것입니다. 이제 한가위 대목장을 치르고 길 떠나셔도 됩니다.

그로부터 날짜가 어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추석도 엄벙덤벙 지나가버렸다. 팔월 말이 되어 안 서방과 나는 길 떠날 채비를 했고, 엄마는 벌써부터 말리지도 못하고 걱정이 태산처럼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떡에나 별 떡이 있지 사람엔 별 사람 없다든데, 그 자식은 전생에 우리 모녀와 무슨 척을 지었다구 이렇게 가슴에 말뚝을 박는다니?

이 서방이 아무리 못된 놈이라 하나 이제 둘도 없는 낭군인데 엄마의 흉한 말이 듣기 싫었지만, 대꾸할 말도 없고 염치도 없어서 그저 입 다물고 길봇짐을 싸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세상이 어지러우니 남장을 할까 하였으나, 그것은 더욱 수상하여 관아치들이 공연히 잡아두고 문초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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