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경북 상주에서 발견됐으나 행방이 묘연한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이 국가 소유가 된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을 갖고 있다가 도난당한 골동상 조용훈(67)씨가 소유권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알려옴에 따라 7일 오후 1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증서 전달식을 한다. 조씨는 귀중한 기록유산인 이 책을 하루 빨리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원리, 용례를 한문으로 설명한 해설서다. 33장 1책으로 된 목판 인쇄물로, 세종 28년(1446) 훈민정음 반포와 동시에 출간됐다. 상주본은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간송미술관 소장본(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상태가 좋고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 소리 등에 관한 당시 집현전 학자들의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상주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본이 유일했다. 상주본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나 굳이 매긴다면 1조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상주본은 고서 수집가 배모(49)씨가 2008년 7월 상주의 자기 집을 수리하다가 발견했다며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절차를 문의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으나, 그해 10월 조씨가 “내가 도둑맞은 것이니 돌려달라”며 배씨를 고발하면서 소송이 벌어졌다. 배씨가 2008년 조씨의 가게에서 고서 2상자를 구입하면서 상주본을 몰래 가져갔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대법원판결은 배씨가 훔친 것이 맞다며 조씨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배씨는 훔친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상주본을 숨긴 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배씨는 현재 문화재보호법 위반(훼손 및 은닉) 혐의로 수감 중이다.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고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경찰은 소유권자 조씨의 요청으로 배씨 집을 여러 차례 압수 수색했으나 상주본을 찾지 못했다. 벌써 외국으로 빠져나갔다는 소문도 있으나 문화재청은 아직 국내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2008년 발견 당시 배씨는 몇몇 언론에 상주본 실물을 공개했는데, 낱장으로 뜯어내 비닐로 싼 상태였다. 550년도 더 된 종이 유물을 그렇게 보관하면 습기에 상하기 쉽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을 찾아내 보존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감 중인 배씨를 설득하는 한편, 사법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강제집행 등을 통해 상주본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상주본의 소유권자가 조씨가 아니라 경북 안동의 조계종 사찰 광흥사라는 주장도 있다. 불상의 복장유물 전문 털이범으로 유명한 서모(51)씨는 광흥사 나한상 속에 들어 있던 상주본을 1999년 자기가 훔쳐서 조씨에게 팔았다고 지난해 말 법정에서 증언했다. 서씨의 말이 맞다면 대법원이 소유권자로 인정한 조씨는 장물을 산 장물아비일 뿐이다. 조계종은 문화재청이 출처가 불분명한 상주본을 광흥사나 조계종과 아무런 협의도 않고 기증받는 것은 문제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학계는 절도범 서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불교와 무관한 기록물이고, 광흥사의 다른 복장유물과 연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계가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낼 경우 장물인지 아닌지 조사하는 절차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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