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꺼리던 화가는 지난 2년간 산중에 숨은 폭포를 순례했다. 빗줄기가 거셀수록 폭포의 자태는 장엄해지기 마련. 빗물에 미끄러지고 젖은 흙에 발이 무거워졌지만 어렵사리 찾아 들어간 폭포 옆에서 들이켜는 막걸리 한 잔은 시름을 잊게 해주는 최고의 풍류였다고 화가는 고백한다. 그곳에서 촬영한 수백 장의 사진과 취중에도 또렷이 남은 낙수의 거친 숨소리는 3~4cm 두께의 두타운 물감과 거친 붓질로 캔버스에 살아났다.
동물과 자연을 소재로 원시적인 생명력과 민화적 해학을 화폭에 담아온 화가 사석원(52)씨의 얘기다. 그가 다녀온 국내 100여 곳의 폭포 중 강한 인상을 남긴 40여 곳이 11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산중미인'에 전시된다.
"폭포는 산의 심장이죠. 심장이 약하게 뛰면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폭포 소리가 웅장하지 않으면 산 전체가 건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에요." 전시장에서 만난 사씨는 강한 붓질과 두터운 마티에르를 통해 무엇보다 "폭포의 소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캔버스와 유화를 사용하지만, 폭포가 주는 인상에 따라 기법을 달리하고 동서양의 붓을 고루 사용했다. 동양화의 폭포는 먹을 칠하지 않음으로써 하얀 포말을 표현하지만, 그는 폭포 소리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두텁게 칠한 흰색으로 대신했다. 소용돌이치는 물결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힘이 넘친다.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은 폭포도 있었고, 색으로 보여주고 싶은 폭포도 있었어요."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공주 계룡산의 은선폭포는 녹음 짙은 산 속 경관을 사실적으로, 밀양의 호박소(구연폭포)는 시원한 물줄기와 에메랄드 빛 웅덩이로 간략하고 추상적으로 그려냈다. 또 금수산 용담폭포에는 폭포로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싸움 소를 그려 넣어 기운생동하는 풍광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폭포 전문가가 다 된 사씨는 KBS 2 TV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나와 유명세를 탄 제주도 서귀포의 엉또폭포를 딱 한 번 봤다고 했다. "비가 50mm 정도 오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틀 후면 다시 건천이죠. 제 그림엔 목가적으로 표현했지만 폭우가 내리면 모든 걸 삼켜버릴 듯 에너지가 큰 폭포죠."
다녀온 폭포 중 비경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설악산 오련폭포를 추천했다. "천불동 계곡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오련폭포는 꼭 한번 가보라"는 화가의 캔버스에는 웅혼한 대자연의 위용이 살아 숨쉬고 있다. (02)720-102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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