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일본 유일의 D램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엘피다 인수를 최종 포기했다. 애초에 세계 2위 업체인 하이닉스 인수의 여세를 몰아 3위인 엘피다까지 인수, 삼성전자와의 본격적 경쟁에 나서겠다던 전략의 중대한 변화다. 한때 전략적 파트너로 고려했던 도시바(東芝)가 먼저 인수경쟁에서 발을 빼는 바람에 인수를 위한 재무조건이 악화한 것도 요인이지만, 반도체시장 환경의 변화를 인정한 결과다.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등했듯, 시장 요구에도 들어맞는다.
■ 현재의 전망대로 세계 4위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엘피다를 흡수해도 D램 시장에 미칠 영향은 그리 대단찮을 모양이다. 마이크론과 엘피다 둘 다 D램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개발(R&D) 능력이 떨어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도 D램 반도체를 소화해온 PC시장의 침체라는 벽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시장 주도자인 삼성전자마저 D램 생산을 줄이려는 마당이다. 이런 사실 확인만으로도 SK는 이번 인수전에서 적잖은 교훈을 얻었다.
■ 돌이켜보면 1971년 인텔의 1K비트 D램으로 문을 연 D램 시장의 중심은 미국에서 일본, 한국으로 넘어왔다. 대형컴퓨터를 위한 '25년 보증 고품질'D램을 겨냥한 시장요구에 부응한 특유의 기술력이 80년대 일본 업체의 주도권을 낳았다. 반면 90년대 들어 컴퓨터 시장이 부단한 업그레이드 수요로 5~6년이면 교체돼야 하는 PC 중심으로 재편된 뒤로는 일본의 강점인 '고기술, 고가격'보다 한국의 '저가격, 보급형 기술'의 경쟁력이 두드러졌다.
■ 시장환경은 다시 바뀌었다. 2008년 리먼 쇼크로 PC시장의 확대에 제동이 걸린 데다 애플의 'i폰'이 촉발한 '스마트폰 혁명'으로 PC의 앞날이 흐려졌다. 삼성전자가 D램을 비롯한 기존 메모리 생산라인을 비메모리 쪽으로 빠르게 바꾸려는 것도 모바일용 시스템반도체 수요의 급증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희망'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엘피스'에서 이름을 딴 엘피다가 끝내 회생하지 못했듯, 한번 잃은 활력은 돌이킬 수 없다는 각성이 더욱 절실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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