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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김용택의 어머니' 그해 봄 엄마는 뙤약볕 속을 걸었다

입력
2012.05.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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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어머니/김용택 지음ㆍ황헌만 사진/문학동네 발행ㆍ256쪽ㆍ1만4000원

김용택(64) 시인의 팔순 노모 박덕성 여사는 열여덟 때 고향인 전북 순창에서 임실로 시집와서 60년 넘게 섬진강변 진메마을에 살며 농사를 짓고 있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시골 아낙이지만 지혜와 사랑으로 충만한 모친의 삶을 시인은 늘 애틋하게 증언해왔다. 그렇게 여러 매체에 발표한 어머니에 대한 글 40편이 책으로 묶였다. 외따로 쓰여졌던 글들이 서로 엮여 어머니의 생애를 복원하면서 개별글의 총합을 훌쩍 뛰어넘는 감동을 자아낸다. (이 산문집처럼 진메마을을 무대로 한 시인의 새 동시집 <할머니의 힘> 이 함께 출간됐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부로 구성돼 어머니의 한 생애를 좇는다. '봄'에 실린 글들은 '작고 야무지다' 하여 '양글이'라는 별명이 붙은 처녀, 시집 와서야 처음 본 신랑에게 한눈에 반한 새색시, 지독한 가난 속에 6남매(시인은 4남2녀 중 장남)를 기르는 젊은 어미를 차례로 비춘다. '신작로'는 그녀가 학사금이 없어 등교를 못하고 먼 길 걸어 집에 온 장남과 마주한 이야기다. 가타부타 말없이 기르던 닭들을 망태에 담아 장터로 간 어미는 닭 판 돈 전부를 아들에게 쥐어주고 집을 향해 시오리 길을 걷는다. "저기 조그마한 어머니가 뙤약볕 속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 내가 탄 차가 지나가자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차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돈을 꼭 쥔 주먹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54쪽)

'여름' '가을'은 자녀들이 장성해가고 살림이 점점 펴지던 어머니의 한창때를 추억한다. 올바른 삶에 대한 통찰, 해학이 깃든 여유로운 태도, 자연을 진정 존중하는 마음 등 그녀의 몸에 밴 덕목들이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일깨운다. 자식들이 마음에 걸릴 때가 언제냐는 아들의 질문에 그녀는 달관의 답변을 내놓는다. "살면서 먼 일이 없겄냐? 나같이 험한 세상도 다 살았는데, 한다."(81쪽) 시야를 가로막는다고 나무를 베어버린 아들을 된통 꾸짖고는 베어진 나무 밑동과 그 옆 나무의 몸을 새끼줄로 잇는다. "내가 왜 이러냐고 하자 어머니는 너무도 태연하게 "목숨을 건네준다"고 했다."(100쪽)

이제 많이 늙으신 모친을 보는 시인의 안타까움은 '겨울'에 실렸다. 어머니는 귀가 어두워져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어느 날은 잠깐 정신을 놓아 아들을 혼비백산하게 한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자식답게 의연하고자 한다. "고향마을 뒷산 오래된 당산나무처럼 어머니는 자연이다. (중략) 동쪽 나뭇가지가 죽고 서쪽 나뭇가지가 서서히 물관을 끊어가듯이 그렇게 삶을 마무리해간다. 어머니는 나무다."(248쪽)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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