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의 미국행을 막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천 변호사가 중국 공민으로서 해외 유학을 원한다면 다른 이들과 똑같이 가능하다”며 “법에 따라 정상 경로를 통해 관련 부서의 절차와 수속을 통과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천 변호사의 미국행을 사실상 용인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적법한 절차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미국과 중국이 긴장을 해소하는 외교 드라마가 연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천 변호사가 미 대사관을 나왔다는 점에서 중국은 체면을 세웠고 천 변호사 가족의 미국행을 이루게 됐다는 점에서 미국은 명분과 실리를 얻었다.
중국이 미국행을 허용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가 더 이상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제4차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위해 베이징(北京)을 찾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등이 천 변호사 사건을 언급하며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건드리는 것에 압박을 받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미중 관계의 기본 틀이 훼손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인권운동가 한 명으로 인해 두 대국의 관계가 틀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천 변호사가 남는 것이 더 불편할 수 있다. 법치국가를 천명하는 중국으로서는 그가 불법구금과 인권운동가 탄압 등을 떠드는 게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미 대사관을 나온 이후 천 변호사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천 변호사가 중국에 남는 것 보다 아예 미국으로 가는 것이 속 편한 일이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가 미국 망명 이후 오히려 위상이 위축됐다는 점도 중국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경우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중국의 공민을 넘겨주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중국은 그러나 천 변호사가 스스로 미 대사관을 걸어 나오고 미국에서 천 변호사를 넘겨 받는 모양새를 취해 체면을 세웠다. 천 변호사 사건에 개입한 미국에 내정간섭이라며 반성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큰 소리도 한껏 쳤다.
미국도 북한, 이란, 시리아 등 국제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도움이 절실한 만큼 긴장 고조가 좋을 게 없다. 그렇다고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방치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더구나 미 공화당은 이 문제를 대선 이슈로 삼을 태세였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의원은 3일(현지시간) 미 의회 산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의 청문회를 주재하고 천 변호사와의 직접 통화가 생중계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관계 훼손을 우려한 양국이 유학 형식을 빈 망명이란 묘책을 찾아 낸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일각에선 천 변호사가 미 대사관을 떠날 때부터 이런 시나리오가 마련됐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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