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료진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환자의 망막에 빛을 인식하는 초소형 전자칩을 이식해 시력을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망막색소변성증을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지 주목된다.
3일 BBC방송에 따르면 옥스퍼드 안과병원과 킹스칼리지 공동연구팀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남성 2명의 망막에 전자장치를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수술은 영국에서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이 시력을 회복한 첫번째 사례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빛을 감지하는 광수용체세포 기능이 퇴행하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심한 경우 실명에 이르게 되는 질환이다. 수정체를 통해 들어온 빛이 망막에서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돼야 하는데,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리면 신호 변환에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된다.
영국 의료진은 이 신호변환 과정을 되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1,500개 감광화소를 집약한 3㎟ 넓이의 초소형 전자칩을 망막에 이식하고, 귀 근처의 피부 아래에 전자칩을 제어할 장치를 심었다. 빛이 전자칩에 도달해 감광화소를 자극하면, 감광화소가 시신경에 전자신호를 보내고, 이것이 대뇌로 전달돼 영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원리다. 이 장치를 이식받은 환자 크리스 제임스는 “전자칩이 이식되는 순간 섬광이 번쩍했다”며 “지금 가까운 거리에서는 직선과 곡선을 구분할 수 있다”고 감격했다.
물론 전자칩 이식이 완벽한 치료법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자칩이 정상적 망막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뇌가 천연색이 아닌 흑백 상태로 사물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녹내장이나 시신경 이상으로 인한 시력 상실의 경우 이 방법을 쓸 수 없다는 점도 한계다.
그러나 연구팀은 “오랫동안 시력을 잃었던 사람에게 불완전하나마 시력을 회복하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며 “이 치료법이 앞으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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