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철순 칼럼] 통합과 진보가 살려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철순 칼럼] 통합과 진보가 살려면

입력
2012.05.03 12:03
0 0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부정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2일 발표된 자체조사 결과는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상황과 시대가 다를 뿐 자유당 때의 부정선거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어떤 점에서는 북한 식 비민주적 공개선거 행태라는 인상까지 갖게 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그 동안 도덕성을 무기로 진보적 투쟁자세를 내세워 이명박 정부를 세차게 공격ㆍ비판해 온 사람들이 그런 부정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이번 4ㆍ11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정당득표율 10.3%로 비례대표 6번까지 당선됐고, 지역구까지 합치면 의원 총수 13명의 제3당으로 부상했다.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획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진보세력의 약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특히 당원들 중 일부(?)의 종북노선이나 자세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이번 선거로 종북 좌파세력이 대거 국회에 들어오게 됐다며 앞으로가 큰일이라고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부정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으니 반 통합진보당 사람들에게는 좌익세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비례대표 후보 선거가 총체적 부실ㆍ부정 선거였다고 규정됐는데도 그 이후의 조치는 형식적이고 미온적이어서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보인다. 출범 4개월 만에 당이 존폐 위기에 몰렸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기류가 상당하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지도부 사퇴도 마지못해 내린 결정인 것처럼 보인다. 관악을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이정희 대표가 부정을 저지르고도 사퇴하지 않고 미적거렸던 상황과 비슷하다.

어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는 진상조사 결과와 수습방안에 대한 인식차가 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양상이 두드러졌다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도덕성에 치명적 하자를 드러냈으면 어떻게 이를 만회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지 그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권의 향배가 아니다. 어떤 점에서는 통합진보당을 위해 이번 사건이 차라리 잘 터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면 원내 제 3정당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공당으로서의 발전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지도부 총사퇴는 당연한 일이다. 비례대표 당선자 처리가 문제인데, 1~3위 당선자가 당권파와 가깝다는 점에서 처리문제에 대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의 총체적 선거부정은 당권파와 가까운 그들을 후보로 뽑기 위해 저질러진 게 아닌가 싶다. 당권을 잃지 않으려다 보니 무리한 고집을 부리게 된다.

하지만 선거 전체의 정당성과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의 득표는 정당하고 어떤 사람들의 득표는 정당하지 않다고 구분해서 볼 수 없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계파 중 하나인 NL(민족해방노선) 당권파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비례대표 1~3번 당선자는 사퇴토록 하는 게 옳다.

통합진보당의 이번 부정은 수사를 통해 그 실체가 명백히 밝혀져야 할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검찰 수사를 촉구한 바 있어 검찰의 태도가 주목된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어제 대표단 회의를 마친 뒤 검찰의 수사 시도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의 수사 의뢰가 없는데도 보수 유령단체의 고발이라는 명분으로 통합진보당을 수사하겠다는 것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는 것이다.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이다. 이제 앞으로 검찰과 공방전을 벌일 것이고, 그러다 보면 도의적 정치적 책임이나 당 쇄신 의지는 희미해질 우려가 있다.

이런 일이 터지면 각 정파가 적당히 봉합해 문제를 덮어오곤 한 모양인데, 앞으로도 그런 식이라면 통합진보당은 더 클 수 없다. 이번 사건이 차라리 잘 터졌다고 하는 것은 '종북좌익'의 굴레나 낙인을 벗고 거꾸로 더 클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뭐가 통합이고 뭐가 진보인지 그 점을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