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가 마침내 날치기 방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며 사실상 문을 닫았다. 6월부터 새 국회가 열릴 것이고 지금의 의석분포로 보면 이제 다수당이라고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국회의 비능률과 무력화를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있지만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쟁점법안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큰 발전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노동관련 법안은 항상 노사갈등과 첨예한 여야 정쟁의 대상이었다. 19대 국회도 적지 않은 노동개혁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여야가 가장 역점을 두고 강조하는 정책과제도 바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다. 특히 연말 대선을 코앞에 두고 펼쳐질 여야의 치열한 정책경쟁에서 일자리 문제는 피해 갈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여야 3당의 총선 공약을 보면 타협보다는 대립과 비생산적 공방으로 시간만 허비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각 당이 내세운 그럴듯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정책방안은 부실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탁월한 홍보감각을 발휘해 '늘어난다! 일자리'를 총선의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 내용을 파고들어가 보면 어떻게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인지 도대체 설명이 없다. 일자리 창출관련 공약이라고 해봐야 청년ㆍ여성ㆍ노인ㆍ장애인 등 취약근로계층에 대한 취업지원서비스를 늘리겠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혹하는 구호에 비해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의 공약은 의욕과잉이다. 2017년까지 338만개, 1년에 6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 계산법이 도대체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2017년까지 실근로시간을 단축해 137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3%의 청년고용을 의무화해 32만개의 추가적인 고용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정규직의 해법에서 각 당의 입장 차이는 더욱 커진다. 민주당과 진보당은 비정규직의 규모를 지금의 반으로 줄이겠다며 의욕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다. 양당은 모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기간제 고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기간제 사용의 사유제한 제도를 법제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별도의 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새누리당은 2015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상시ㆍ지속적인 업무에는 정규직만을 쓰겠다고 했다. 이는 이미 1월 정부대책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고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이 없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으로 보면 새누리당의 접근 방식이 더 낫다. 민주당의 사유제한이나 정규직 전환지원금은 이미 많은 논란을 거쳐 2006년 비정규직보호법 제정 당시에 기각된 방식이다. 공공부문에 한정된 대책이긴 하지만 2년이라는 사용기간제한의 기준을 사람이 아니라 직무로 바꾸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2년 이상 계속되는 일자리에는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한다는 차원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의 입법취지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어떻게 민간부문까지 확산시킬 것이냐에 대한이 답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또 하나의 큰 쟁점이 근로시간단축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행히 3당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인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다만 추진 배경과 단축의 속도에서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여야의 대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러 조건으로 볼 때 여야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일자리에 관한 구체적인 해법을 하나라도 마련하려면 긴밀한 대화와 전문적 검토 그리고 합리적 타협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있고 의욕이 넘치는 초선이 과반을 넘는 국회에서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불필요한 정치공방을 줄이는 하나의 방안으로 공익전문가로 구성된 10인 내외의 일자리전문가회의를 미리 가동시키면 어떨까.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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