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자동차 업계의 주요 뉴스 중 하나는 지난해 수입차 판매가 사상 최초로 10만대를 돌파했다는 것이었다. 점유율 역시 8%에 육박하는 수치를 기록했다. 10만대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수입차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수입차의 공세가 본격화된다'는 요지의 보도가 이어졌다. 해당 보도 중 상당수는 수입차의 시장 잠식을 우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외산 브랜드의 판매량과 점유율이 수시로 보도되는 산업은 자동차 산업이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외산 스마트폰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휴대전화 산업도, 외산 브랜드들이 상당한 시장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는 가전 및 화장품 등 소비재 시장 등도 외산 브랜드들의 판매량과 점유율을 정기적으로 집계하고 보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판매된 모든 자동차가 등록되기 때문에 정확한 집계가 가능한 자동차 산업과는 달리 타 산업의 경우 실제 판매량에 대한 정확한 집계를 산출하기 힘들다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를 통해 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한 판매량과 점유율 집계가 가능한 휴대전화 산업의 경우 외산 브랜드들의 판매량이 함께 집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집계 용이성에 따른 차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국산'과 '외산'은 동일하게 분류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차이가 있는 제품이라는 시각과 접근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애플 아이폰이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폰의 판매량이 얼마나 늘었는지에 대한 기사는 자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외산 스마트폰 전체가 국내 시장을 얼마나 잠식했는지에 대한 보도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해외 시장에서 국산 스마트폰이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에서 얼마나 점유율을 높였는지에 대한 뉴스를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이 같은 접근법은 단순히 아이폰 외 타 외산 스마트폰의 판매가 미미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국산 스마트폰과 외산 스마트폰으로 구분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바탕에는 국산과 외산의 가격이나 품질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한국 브랜드들이 더 이상 안방 호랑이가 아닌,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 합당한 접근법이라고 보여진다.
자동차 시장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이 이미 왔다. 국산차의 경쟁력이 외산차에 비해서 분명한 격차를 보이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해외 시장에서의 한국 브랜드의 비약적인 성장이 이를 증명한다. 수입차와 국산차가 서로 다른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팀이 아니라 동일한 리그에서 경쟁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또 한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은 '국산'과 '수입산'의 구별법이 갈수록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을 계산할 때 '국산차'의 의미는 '한국에서 생산되어 한국에서 판매된 차'를 의미하고, 국가별 자동차 생산대수를 집계할 경우의 '한국차'는 '한국에서 생산되어 한국 및 해외에서 판매된 모든 차'를 의미한다. 브랜드 별 생산대수 순위를 매기는 경우에서는 생산국가와 무관하게 집계된다. 즉 한국에서 생산된 차라도 해외로 수출된 경우에는 외국 브랜드의 생산분으로 집계되는 것이다. 지분구조로 따지면 국산 브랜드와 외산 브랜드의 분류는 더욱 무의미해진다. 국산차로 분류되는 5개 완성차 업체 중 3곳이 외국 브랜드가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이 성숙한만큼 새로운 접근법과 분류법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미국 및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국산차와 수입차를 구분짓던 중요한 차이였던 8%의 수입 관세 역시 없어지기 때문에 수입차라는 카테고리로 합산하기 보다는 각각의 개별 브랜드로 집계하는 것이 FTA 시대에 더 걸맞은 기준이라고 보여진다.
앞으로 본격적인 FTA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관세와 규제 등 서로 다른 잣대를 없애는 것이 FTA 정신임을 감안할 때 국산과 외산을 별도로 분류하는 것은 갈수록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조만간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수입차 3대 브랜드가 아닌, 한국 내 8위 자동차 브랜드로 집계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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