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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써전이다] <9>양정현 건국대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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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써전이다] <9>양정현 건국대의료원장

입력
2012.05.0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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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의사를 만났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그 수줍고 예쁜 가슴이 채 빛나기도 전에 도려낼 수밖에 없는 의사도 가슴이 아팠다. 살기 위해 끝내 여성(女性)을 잃은 그는, 절망했다. 그도, 그의 어머니도 의사를 원망했다. 의사는 원망을 듣고도 내 덕에 살지 않았냐고, 차마 되묻지 못했다. 그저 그의 남은 삶에서 상실감이 하루라도 빨리 희미해지길 바랄뿐이었다.

여성의 가슴을 수술하는 의사는 다른 외과의사가 겪지 않아도 되는 마음고생을 치른다. 올해로 40년째 유방암을 수술하고 있는 양정현(63) 건국대의료원장도 생존율과 예후, 환자의 삶의 질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한다.

유방암 수술의 중압감

유방암이 가장 편한 수술이라고, 쉽게 말하는 의사들이 있다. 심장이나 폐, 장기이식 수술처럼 목숨과 직결되지 않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 없다고 말이다. 물론 유방암이 생존율 높은 암인 건 맞다. 초기(1~2기)는 5년 생존율이 80%를 넘고, 말기(4기)라도 40%에 이른다. 하지만 유방암 집도의는 현대의학으로도 아직 완전히 풀지 못한 난제를 떠안아야 한다. 바로 가슴을 잃은 여성의 상실감이다.

"특히 미혼여성에게 유방을 완전히 절제하느냐, 보존하느냐는 삶의 질을 넘어 운명을 좌우하기도 하죠. 상황을 이해하고 수술에 동의하고도 막상 가슴을 잃고 나면 보호자까지 나서서 항의하기도 해요. 의사로선 당연히 생존율과 예후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죠. 하지만 유방을 절제한 여성이 겪는 상실감은 삶의 질이 좀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란 걸 잘 아는 상황에서 수술방법을 결정할 때 느끼는 중압감은 남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유방 절제 환자나 항암치료 환자는 다른 암환자보다 훨씬 더 예민해지거나 남편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는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수술만큼이나 중요한 치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최근 종양정신과라는 분야가 생겼어요. 외과의사가 미처 다하지 못하는 부분을 정신과와 협진으로 도와주는 거죠. 특히 여성들이 유방암을 극복하는데 많은 힘이 될 거에요. 우리 병원에서도 정신과를 비롯한 여러 진료과가 함께 유방암을 치료하는 전문센터가 올해 안에 정식으로 문을 엽니다."

진단도 치료도 선두주자

양 원장이 갓 전문의가 된 30여 년 전만 해도 남성이 대부분인 집도의들은 가슴에 암이 생기면 일단 들어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양 원장은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유방보존술을 배워 198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 시작했어요. 그 뒤로 보존술이 빠르게 발전했죠. 이젠 암이 너무 많이 진행됐거나 조직 형태가 아주 나쁜 경우 말고는 가슴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게 됐어요. 유방암 수술 성적을 따질 때 보존율이 중요한 평가요소로까지 자리 잡았고요."

양 원장을 찾은 유방암 환자의 약 70%는 가슴을 잃지 않는다. 선진국의 유방 치료 성적과 비슷한 수치다. 양 원장에 따르면 현재 미국 의료계도 유방 보존율이 최대 80% 정도다. 국내 평균은 50~60%에 머물러 있다.

보존술과 함께 최근엔 유방 수술 분야에서 보편화한 내시경술과 감시림프절 생검(生檢ㆍ조직 채취 검사), 침 정위 생검의 3가지 기술은 양 원장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특히 1995년 성공한 감시림프절 생검 첫 사례를 이듬해 국내 학회에서 발표하자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다 재발하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비난이 쏟아졌어요. 유방암 수술 후 아래팔이 퉁퉁 붓는 등 여러 가지 합병증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인데 말이죠. 확신이 있어서 밀고 나갔어요. 결국 3, 4년쯤 지나니 대부분의 병원에서 감시림프절 생검을 시작하더군요."

유방암이 전이될 때 가장 먼저 이동하는 경로가 바로 겨드랑이 아래 림프절이다. 이동을 시작한 암세포가 제일 처음 도달할 림프절(감시림프절)을 찾아 본격으로 수술에 들어가기 전 암세포가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하는 방법이 바로 감시림프절 생검이다. 옛날엔 유방암이 생기면 전이 위험 때문에 유방뿐 아니라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몽땅 제거했다.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수술 후 합병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젠 감시림프절 생검 결과 전이가 안 됐음을 확인하면 림프절을 살릴 수 있다.

"국내에 침 정위 생검법이 없던 1980년대 초반은 유방 촬영장비도 막 들어오던 시기였어요. 유방암 조기검진은 생각도 못 했죠. 암이 손으로 만져질 정도 돼서야 뒤늦게 병원을 찾으니 가슴을 잃는 환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요즘 침 정위 생검법은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유방 속에 특수 철사를 넣어 암으로 의심되는 조직을 떼내 검사한다. 하지만 양 원장이 이 방법을 국내에서 막 시작하던 시기엔 특수 철사가 없었다. 양 원장은 하는 수 없이 보통 주사바늘을 썼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시작한 진단법이 이젠 없어선 안될 기술로 자리 잡았다.

아줌마 환자라 엄살?

"40여 년 전만 해도 외과에 유방을 전공하는 의사가 거의 없었어요. 위암 간암 같은 분야가 주류였죠. 그래도 유방암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치료에 반응을 잘 보이는 암이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항암제가 좋아져서 크게 나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항암치료에 듣는 암이 많지 않았거든요. 환자를 가장 많이 살릴 수 있는 분야를 택한 겁니다."

당시 국내 여성암 발병률 1위는 자궁암이었다. 양 원장은 머잖아 유방암이 자궁암을 밀어내고 1위 자리를 꿰찰 거라고도 예상했다.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때 미국에서 가장 많은 여성암이 바로 유방암이었거든요. 우리나라도 분명 따라갈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발병 양상까지 비슷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선 여성 유방암 발병률이 40, 50, 30대 순으로 높지만, 미국은 그 중 50대가 제일 많이 걸리고 나이가 들수록 빈도가 증가하죠.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고요. 이유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학계에선 민족 간 차이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수많은 여성이 양 원장의 도움으로 암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간혹 여성, 특히 아줌마 환자들이 증상을 호소하는 걸 뭘 몰라서 그런다, 괜찮은데 괜히 엄살 부린다 하며 무시하는 의사들이 있다. 양 원장은 일침을 놓는다. "메스를 놓을 때까지 환자는 의사의 스승이에요. 의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 뭔지 아세요? '괜찮다'는 말입니다."

■ 양정현 원장과 유방암 일문일답

독신·늦출산·모유수유 외면이 3대 위험요소

Q. 유방암을 예방하는 음식은.

A. 딱 꼬집어 뭐가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올리브기름이나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 있는 음식이 예방 효과가 좋은 편이라는 건 학계에서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버섯이나 브로콜리, 토마토, 홍삼, 마늘 등 일반적으로 암을 예방한다고 알려진 음식의 유방암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다.

Q. 유방암에 안 걸리려면.

A. 가장 큰 위험요소 3가지는 독신으로 사는 것, 모유수유 안 하는 것, 아이를 늦게 낳는(35세 이상 초산) 것이다. 일찍 결혼해 아이 많이 낳고 젖 주며 키우던 옛날엔 지금만큼 유방암이 많지 않았다. 기름기 많은 음식과 술, 비만도 유방암의 적이다.

Q. 유방암 검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A. 35세 이상 여성은 매달 한번씩 자가검진을 하는 게 좋다. 40대가 넘어가면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1년에 1번은 검사해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은 유방 조직이 서양에 비해 치밀하기 때문에 X선 촬영과 초음파를 둘 다 해보길 권한다.

Q. 여성만 유방암 걸리나.

A. 국내에서 1년에 60~70명 남성 환자가 생긴다. 남성도 여성의 100분의 1 정도로 작은 유선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유방암의 원인은 아직 모른다. 여성에서 유방암이 생기는 이유는 여성호르몬 이상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남성 유방암은 남성호르몬과는 별 관계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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