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레이싱팀의 감독이자 드라이버인 김의수(40)는 '포뮬러원(F1)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43ㆍ독일)에 비견된다. 비록 분야가 다르지만 마흔이 넘는 불혹의 나이에도 빼어난 레이싱 기량을 뽐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레이서 김의수는 여전히 '스톡카(양산차를 베이스로 한 경기용 튜닝카)의 1인자'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레이싱 입문 20년째를 맞은 그는 올해 황진우(발보린)와 다카유키 아오키(인제오토피아킥스) 등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5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개막되는 '2012 헬로모바일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시리즈' 슈퍼 6,000클래스의 2연패에 도전하는 김의수를 3일 용인 CJ 레이싱팀 캠프에서 만났다.
파란만장 인생사가 전성기의 원동력
김의수는 1993년 청포대 레이스를 통해 입문했다. 한국 레이싱의 1.5세대라 할 수 있다. 그는 오프로드부터 시작해 온로드 대회까지 정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최고 클래스에서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김의수는 "레이싱에 입문할 때 친구와 손잡고 10년 만 고생하자고 했는데 10년째 GT1 시리즈에서 챔피언을 차지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의수는 2002~04년 3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2009, 2011년 슈퍼레이스 6,000클래스에서 정상에 올랐다. 10년간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에 대해 "박스카의 경우 운영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가 승패를 좌우한다. 포뮬러와는 달리 충돌하면서 레이스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며 "마인드 컨트롤과 냉정심은 경험에서 밖에 나올 수 없기에 30대 들어 정점에 올라서게 된다. 세계적으로도 포뮬러를 제외한 레이싱의 1인자는 30대 중ㆍ후반 드라이버"라고 설명했다.
무면허 운전, 무모한 도전, 환각 주행
IQ 134의 김의수는 빠른 두뇌 회전과 천부적인 드라이빙 감각을 타고났다. 4세 때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4살이 드라이버로 브리샤 시동을 걸어 200m를 주행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들어서는 무면허 운전을 시도했다. 택시를 운전하던 아버지가 쉴 때면 자동차 키를 훔쳐서 차를 몰았다고. 중학교부터는 더욱 대범해졌다. 김의수는 "운전을 잘 하다 보니 조직에서 수배령이 떨어진 적도 있다. 당시 아는 형들과 친구의 부탁으로 운전만 했는데 알고 보니 어깨들이 타는 차량이었다. 상대 조직에게 쫓겨 45일간 조폭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91년 울산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에 마음이 사로잡혀 드라이버의 꿈을 키웠다. 봉고차로도 백스핀과 드래그 등을 어렵지 않게 구사했을 만큼 빼어났지만 드라이버 도전은 무모했다. 그는 "쇼크 업소버(노면 충격을 흡수하는 스프링의 진동을 잡아주는 장치)를 기차 스프링으로 사용하고, 오토바이 오일을 넣는 등 당시에는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튜닝을 했다. 차가 불이 나고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2000년 GT 대회에서는 환각 주행을 하며 응급차에 실려 나가기도 했다. "10바퀴를 돌고 난 뒤 휘발유 냄새가 계속해서 들어왔다. 기름 냄새에 취해 환각 상태에 빠진 데다 파워 스티어링까지 나간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결승선을 앞두고 차가 멈추는 바람에 우승을 놓쳤고, 차 안에서 그대로 기절했다. 팀원들이 보름 밤을 새가며 힘들게 차를 만들었던 걸 알고 있었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같으면 바로 멈췄을 텐데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고교 중퇴자의 학교 설립과 인재 양성의 꿈
김의수는 중졸이다. 울산 성신고를 자퇴한 뒤 다시 울산공업고를 들어갔지만 가정환경과 복합적인 상황 탓에 중퇴했다. 그는 "난간에서 떨어져 병원에 2개월 반 동안 입원했는데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다단계인 차 보험 회사에서 영업을 했는데 최연소 과장으로 승진되는 등 사장님 못지 않게 돈을 벌었다"며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고 마침 자동차 대회를 보게 되면서 머리 속이 하얘지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베스트 레이서로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앞으로 도전을 위해선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 "중졸인 게 부끄럽진 않지만 떳떳하지도 않는 것 같다. 앞으로 자동차ㆍ해양ㆍ항공 전문대학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는 게 최종 꿈이다. 레이싱 관련 업종이 3D 직업이라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며 검정고시 통과 후 대학까지 졸업할 것임을 약속했다. 그리고 "해외 대회에 국산차를 가지고 출전해 한국 모터스포츠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자'는 좌우명처럼 김의수는 중년의 나이에도 레이싱을 통해 인생을 꽃피우고 있다.
용인=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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