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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80년대 운동권, 2010년대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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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80년대 운동권, 2010년대 진보당

입력
2012.05.0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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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시위'로 규정됐던 1980년대 학생운동에서, 운동권은 화염병을 정당방위라고 여겼다. 최루탄과 곤봉으로 무장한 진압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였고, 군사정부를 향한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적법한 테두리의 한계가 뻔하기도 했다. 운동권 안에서 보면 부당한 법이니 지키지 않는다고 거리낄 게 없었고, 국민 아닌 정권에게 봉사하는 공권력이니 싸우는 게 당연했다.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80년대식 논리를 2012년 현재에 변함 없이 적용하는 것인데, 통합진보당의 4·11 총선 비례대표 후보 경선 비리에서 이런 모습이 비친다. 대리·중복·유령 투표 등 드러난 부정의 실태도 놀라운 데다, 선거부정이 발표된 뒤에도 계파 간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를 보고 있으려니 "부정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당권을 잡고 의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같다. 3일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국민에 사과하고 총사퇴키로 했지만, 검찰 수사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표가 물러난들 같은 일이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아, 진보 정당에 걸었던 기대에 금이 간다.

사실상 통합진보당은 그 존재만으로 시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체제를 거부하는 대신 정당활동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꿈꿀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는 과거와 달라졌고 정치 환경은 풍부해졌다. 더구나 통합진보당은 이번 총선에서 서울 지역구 의원을 배출, 안정적인 유권자 기반도 확인했다. 그런데도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경이라면, 어쨌든 약자와 소수의 편이니 이 정도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통합진보당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이냐고. 민주적 절차를 버리고 성취한 진보 정당의 득세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이와 비슷한 오류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후보매수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곽 교육감이 '선의'에 의한 부조를 주장했을 때부터, '선의'가 누구에 의해서든 인용될 것이라고 쉽게 예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리실의 불법사찰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이 같은 표현을 썼다. 곽 교육감 입장에서는 이 전 비서관과 자신은 질적으로 다르다며 펄쩍 뛰었을 만하다. 법정이 선의나 악의와 같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돈을 준 행위를 처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선의'를 방패막이로 내세운 악의적 범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물론 통합진보당이 진보 진영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국민 중에는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다만 진보 정당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 않더라도 진보 정당의 존재는 전체 정당정책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진보 정당이 반드시 벗어나야 할 것은 "옳은 일을 하니까 옳다"는 저 교조의 그늘이다. 진보 정당이니까 더 도덕적일 필요는 없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절차적 민주주의다.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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