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검역주권이 예상보다 부실하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정부는 미국 내 수출작업장에서 광우병 발생 위험이 높은 특정위험물질(SRM)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사실이 발견되면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긴급한 조치'에 해당돼 수입중단이 가능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국내 검역 과정에서 SRM이 세 번 이상 발견돼도 겨우 수출작업 중단 조치만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일 농림수산식품부의 '미국산 쇠고기 검역검사 지침'에 따르면 국내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SRM이 발견돼도 해당 수출작업장 폐쇄는 고사하고 문제 제품에 대한 불합격조치만 가능하다. 대신 검역검사 지침은 미국 측에 SRM이 섞여 들어온 경위 조사를 요청하고, 개봉검사 비율을 3%에서 10%로 올려 5회 연속 검사하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SRM이 적발된 동일 수출작업장의 다른 제품에서 SRM이 2회 이상 추가 발견돼도 수입ㆍ검역중단이나 작업장 폐쇄는 불가능하며, 단지 수출작업 중단 조치만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광우병 젖소가 발견된 직후 "SRM은 국내에 수입되지 않으며, 'SRM 제거의 불완전성'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 포함된다"는 말로 국민들을 안심시켜 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은 30개월 미만 연령검증품질체계평가(QSA) 프로그램을 거쳐 쇠고기를 수출하기 때문에 검역 과정에서 SRM이 발견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설령 SRM이 발견되더라도 수출작업 중단 조치 이상은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내 도축장 작업 인부들의 숙련도가 떨어져 SRM이 완벽히 제거된다고 장담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축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소를 도축하려면 최소 4~5년 정도의 경험이 필요하지만, 미국에선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는 남미와 동남아의 미숙련 작업자가 많아 SRM 제거를 포함한 정밀한 도축작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 정부가 승인한 미국 내 50여개 수출작업장 중 매년 방문 조사가 이뤄지는 곳은 6, 7개에 불과하다. 전체적인 검역안전망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유럽과 일본은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눈 등도 SRM에 포함시키지만 우리나라는 SRM 범위를 30개월 이상으로 국한시키는데다 미국산 쇠고기 검역 과정에서 SRM이 발견돼도 대응 강도가 형편 없다"고 지적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