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리고 앉은 도공의 표정에 장작가마의 거친 호흡이 반사된다. 석탄 삼킨 듯 시커먼 연기를 토하던 가마의 아가리가 맹렬히 온도를 높이며 속에 머금은 그릇의 윤곽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익어가는 그릇의 자태가 흡사 화염으로 결계한 수행자들 같다. 도공이 주시하는 것은 그릇이 아니라 불이다. 온도가 높을수록 장작불은 맑다. 섭씨 1,300도에 가까워진 불은 적색을 벗어나 차라리 백색이다. 불의 힘이 수그러드는 찰나, 도공이 오른팔에 들고 있던 소나무 장작을 가마 속으로 던진다. 소성(燒成ㆍ굽기) 작업이 끝날 때까지 반복하는 동작이다.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시 신둔면의 산기슭에 위치한 전통 가마. 해거름에 시작된 작업은 다음날 아침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어두웠으나 날은 맑았고 불 앞에 앉은 도공의 얼굴은 밤새 새벽 바다의 색깔이었다.
전국 어딜 가나 밤실이나 뒷골만큼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옛 지명이 사기막(또는 사기막골)이다. 옛사람들의 삶에서 그릇을 굽는 일은 논밭을 매고 베를 짜는 것만큼 흔하고 필수적이었던지 가마도 도공도 늘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다른 옛기억들처럼 이제 아득해진 이야기다. 중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뻗은 3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마주치는 이천의 사기막골은, 옛이름과 지금의 마을 모습이 일치하는 아마도 유일한 장소일 것이다. 도예촌으로 단장된 이곳엔 도자기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가게, 그리고 몇 곳의 가마가 모여 있다. 비록 옛모습대로는 아니더라도 전통의 한 가닥을 현재형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해마다 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이맘때면 잔치 분위기로 왁자해진다.
"여기라고 뭐 다른 게 있었겠어? 옹기나 만들어 팔던 가마 두어 개만 남아 있었는데, 한 오십 년 전에 불 땔 때 옛날 도자기를 빚어서 넣어보기 시작한 거야. 그러다가 도자기 해보려는 사람들이 소문 듣고 하나 둘 모여들었지."
도자기 문화가 이천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은 아니다. 이웃한 광주에 조선 왕실에 그릇을 구워 바치던 관요(官窯)가 있었으니 이천 도공들의 솜씨가 녹록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구한말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이천의 가마들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맥이 끊겼다.
지난해로 도자기를 빚은 지 반백 년이 된 서광수(64ㆍ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씨에 따르면 이천이 도예촌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60년대의 일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 근근이 관급품 그릇을 굽던 도공들이 이천에 모여 본격적으로 도자기 복원을 시작한 것이 1963년 무렵. 아이러니하게도 한일 국교정상화(1965)로 일본인의 수요가 폭증한 것이 부흥의 기폭제가 됐다.
사기막골을 둘러보다 해강요, 고려도요 등 오래된 가마들이 모여 있는 수광리로 갔다. 서씨의 가마(한도요)가 있는 산기슭도 이 근방이다. 외국인 관광객도 심심찮게 마주치게 되는 사기막골과 달리 이쪽은 찾아오는 발길이 뜸하다. 하지만 진짜 도자기를 빚고 굽는 풍경을 가까이서 접해보고 싶다면, 사기막골에서 이천쌀밥집이 줄지은 대로를 건너 이쪽으로 와볼 일이다. 해강도자미술관을 빼면 여행객을 위한 시설은 따로 없다. 하지만 어느 가마고 견학하러 왔다고 말하면 기꺼이 내부를 안내해 준다. 분주한 곳은 한 달에 한 번, 그렇지 않은 곳은 계절마다 한 번 꼴로 가마에 장작불을 넣고 도자기를 굽는다. 맞춰서 그날 밤 찾아가는 것이 제일이다. 도자기를 왜 불의 예술이라고 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다.
"아무리 성형(빚기)을 잘 하고 조각을 잘 해 놔도, 마지막 불에 들어갔다 나와서 모든 게 결정돼. 어떨 땐 절반 가까이 건질 때도 있지만, 달항아리 같은 경우에는 한 가마 통째로 꺼내자마자 깨버릴 때도 있어. 불을 다루는 게 그만큼 까다롭거든. 내가 호롱불 켜놓고 배워서 10년 만에 웬만한 기술을 다 익혔는데, 불은… 글쎄 아직도 함부로 말하기 힘들어."
소성 작업을 준비하며 그가 들려준 얘기는 예술보다 기술에 가깝게 들렸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은 흙을 캐는 채토 작업에서부터 불순물을 걸러내는 수비, 질흙을 만드는 반죽, 물레에 얹어 형태를 잡는 성형, 유약을 바르는 시유 등으로 나뉜다. 소성은 채색 전 초벌구이와 시유 후 재벌구이 두 차례.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서씨는 입술보다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늙은 도공의 손엔 지문이 없었다. 평생을 일곱 가지 흙을 섞어 도자기를 빚은 손이다.
도자기에 담긴 형이상의 가치를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어머니의 뽀얀 젖빛"에서 멈췄다. 감히 그 말을 더 파고들어 도자기의 예술세계가 어떻네 건방을 떨 마음을 일으킬 수 없었다. 말이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그의 손가락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이천=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반죽 만들고 가마에 불 넣고… 풀코스 도공 체험
흙을 만지는 체험을 통해 일상을 벗어난 여유와 감성적 치유의 효과를 누리는 잔치인 제26회 이천도자기축제가 20일까지 경기 이천시 설봉공원과 도예촌 등에서 열린다. 도자기축제는 1987년 시작된 이래 총 2,600여만명이 다녀간 대표적 지방 축제다. 올해는 150여개의 도예 업체가 참여해 '도자, 나눔 그리고 휴식'을 주제로 전시 판매 모음전, 나눔 체험 이벤트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시로는 '차와 도자기'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도자기 명장들의 작품으로 차 탁자를 꾸민 특별전, 작가들이 제작한 이색 잔들의 퍼레이드인 '100인 쇼룸', 새로운 식기 트렌드를 반영한 모음전 등이 마련됐다. 이천시 도자기 산업단지인 도자클러스터에서 개발된 제품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전시된 도자기 중 일부를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흙을 밟아 반죽을 만들거나 그릇, 접시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흙 속에서 구르고 빠지는 자유를 만끽하는 흙공방 체험, 장작가마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장작과 도자기가 돼보는 몸짓 체험 등 이색 이벤트도 준비됐다. 신둔면 일원의 전통 가마에서는 도자기를 만들고 장작가마에 불을 넣을 수도 있다. 축제장과 부근 온천 등을 연계한 3, 4만원대의 여행 상품도 개발해 판매한다.
성인 5,000원, 18세 이하 3,000원(사전 등록하면 각 3,000원,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료 중 일부는 지역 상품권으로 바꿔준다. 축제 기간 이천 행정타운과 설봉공원 사이 무료 셔틀버스가 다닌다. 월~금 오전 10시~오후 6시, 주말ㆍ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 (031)644-2944.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