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유치원요? 세상에서 제일 큰 동창, 동문 거느린 유치원입니다.”
1982년 2월,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 교육을 목적으로 KBS 전파를 타기 시작한 ‘TV유치원’이 올해로 서른 살이 됐다.
프로그램을 맡은 최태엽(54) PD는 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청 대상 연령대가 4~7세 미취학 아동임을 감안하면 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 태어난 2,200만여명이 TV유치원을 본 셈”이라며 “한국인 절반이 TV유치원 동문”이라고 했다.
어린이날을 사흘 앞두고 특집 방송 준비에 분주한 최 PD와 신동인(50) PD를 만났다. TV유치원 제작 경력은 최 PD가 5년, 신 PD가 18년이다.
요즘이야 어린이용 TV프로그램과 책이 넘쳐나지만, 유치원도 일반화 하지도 않고 교재도 드물던 초창기 TV유치원은 어린이들의 필수 시청 프로그램이었다. 최 PD는 “방송시간이 오전 7시반부터 25~30분 정도였다”며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등교 전에 TV유치원을 안 보고 간 이가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2,200만 TV유치원 동문’이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TV유치원이 생산한 기록은 더 있다. “이렇게 늙은 어린이 방송이 없다”고 슬쩍 추임새를 넣자 줄줄 나왔다. “방송 진행 역할을 맡은 ‘하나 언니’만도 20명이 넘어요.”(신 PD), “방송 횟수와 시간은 또 어떤데요. 8,560회에 시간으로 따지면 5,566시간이고, 일수로는 148일을 넘겼다니까요.”(최 PD) “지금까지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린이만 10만명. 이런 방송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신 PD)
방송기간이 30년에 이르다 보니 초창기 방송을 보면서 성장한 지금의 30대 중반들이 서른쯤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는 부모가 봤던 것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신 PD는 “유치원 이름 빼고 모든 게 달라졌다”며 “시대의 교육 트렌드 변화에 따라, 혹은 그 변화에 앞서서 TV유치원은 변했다”고 했다.
한글과 숫자를 가르치는 등 지식 전달 중심의 방송에서 노래와 춤을 겸한 놀이교육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최 PD는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집에서 혼자 노는 어린이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성이 떨어지고 심신의 건강도 악화하고 있다”며“최근 방송에는 뮤지컬도 넣고, 춤, 노래 등으로 함께 놀이를 하면서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2007년 ‘TV유치원 하나 둘 셋’을 ‘TV유치원 파니파니’로 이름을 바꾼 것은 신호탄이었다.
막을 올리고 내리며 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던 ‘하나 언니’가 사라진 것도 이때였다. 신 PD는 “놀면서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다 보니 방송 진행 여건상 하나 언니 혼자로는 무리였고, 그래서 진행자를 팜팜, 샤랑, 윙키 등 세 명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팜팜은 씩씩함을 대표하는 캐릭터고, 노래와 춤을 잘 추는 샤랑은 사랑스러움을 상징한다. 윙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두 PD는 제작 환경이 좋지 않은 게 옥에 티라고 했다. 이 때문에 TV유치원이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으로서의 경쟁력을 점점 잃어 가고 있다는 판단이다. “방송 앞뒤로 광고를 붙이긴 하지만 어린이 광고가 늘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정책적인 지원이 따라야 할 겁니다.”(신 PD) “그래야 예능 프로그램으로만 몰리는 능력 있는 젊은 PD들도 오지 않겠어요?”(최 PD)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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