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펜싱 플뢰레의 은메달리스트 남현희(31ㆍ성남시청)에게는 '땅콩검객', '2인자', '성형파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뒤에는 이제 '새댁검객'으로 불린다. 하지만 런던 올림픽 준비 탓에 신혼의 깨소금을 포기한 지 오래다.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남현희는 "남편을 한 달에 적게는 1번 많게는 3번 보는 게 다에요"라고 새댁스러운 귀여운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2세 계획도 미룰 만큼 올림픽 금메달 사냥에 대한 다부진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얌전한 새댁, 독해진 검객
남현희는 5살 연하인 사이클 선수 공효석(금산군청)과 결혼했다. 틈만 나면 1~2분씩 통화할 정도인 '닭살커플'이라고. 남편 외조 덕분에 건강식품도 챙기게 됐다. 그는 "이전에는 비타민 같은 걸 전혀 먹지 않았다. 남편이 글루타민과 글루코사민 등 갖가지 건강식품을 챙겨준다. 이 덕분에 몸이 안 아픈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건강식품뿐 아니라 스타일도 꾸며줘 젊고 예뻐지고 있다고. 그는 "'천생연분'을 애칭으로 사용하는데 '천생이', '연분이'라 서로 부른다"며 볼에 홍조를 띠었다.
남편 앞에선 얌전한 새댁이지만 검만 잡으면 독해진다. 남현희는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서 더욱 여우같이 변하기로 마음 먹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1점 차로 은메달에 머물렀던 그는 "한 포인트지만 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다. 그때는 너무 얌전하게 뛴 것 같다"며 "가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야 제 포인트를 딸 수 있다. 이태리 선수처럼 적극적이고 지능적으로 심판에게 어필하면서 노련한 경기 운영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남현희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심하게 오버하자 "그래 너희끼리 다 해먹어라"라고 거침없는 입담을 날리기도 했다.
주특기 팡트(런지) 하루 1,000번 '타도 이태리'
155㎝의 '땅콩검객' 남현희는 170㎝가 넘는 '장신의 이탈리아 3인방'과 힘겨운 금메달 경쟁을 펼쳐야 한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발렌티노 베잘리(38), 디 프란시스카(30), 에리고 아리아나(24)가 경쟁 상대. 남현희는 단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특기 팡트(팔을 길게 뻗은 후 몸을 앞으로 내밀어 상대를 향해 깊게 찌르는 동작)를 하루에 1,000번 이상 구사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 비해 여유도 생겼고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에 자신 있다. 모두 해볼 만한 상대다. 에이고는 아직 어려 기복이 있고, 디 프란시스카와는 올 시즌 1승1패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팡트 동작을 많이 하다 보니 후유증도 생겼다. 왼손잡이인 남현희는 갑자기 뒤를 돌아서더니 "왼쪽 허벅지가 오른쪽보다 훨씬 굵죠"라며 "팔 근육과 길이도 불균형하다. 직업병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남현희는 주특기를 살려 4월 말 일본에서 끝난 아시아펜싱선수권에서 여자 플뢰레 개인과 단체전 2관왕을 차지하며 올림픽 금메달 후보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결혼반지 끼고 '금빛 찌르기'
남현희는 지난 2월 폴란드 그랑프리에서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준우승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예물로 받은 다이아 귀걸이 한쪽을 잃어버렸기 때문. "그 동안 예물을 다 차고 뛰었다. 하지만 귀걸이를 잃어버린 뒤에는 경기 중에는 예물을 차지 않는다." 시계와 염주를 차기 때문에 오히려 좌우 무게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진다고.
비록 예물을 잃어버렸지만 올림픽에서는 결혼반지를 끼고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남현희는 "남편과 함께 경기를 한다는 느낌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올림픽 티켓을 따지 못한 남편은 한국에서 '연분이'를 응원할 예정이다. 남현희는 시어머니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힘내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준다." 이제 남현희는 4년 전보다 더욱 커진 가족의 힘을 무기로 올림픽 금메달을 겨누고 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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