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높이의 작은 금잔에 수십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커피잔 받침, 갓난아기 주먹 만한 붉은 루비를 비롯해 온갖 보석과 금 은으로 치장한 각종 장신구, 금도금한 은실로 포도송이를 수놓은 목욕 수건, 은으로 꽃무늬를 새기고 자개로 덮은 욕실용 신발, 손잡이에 루비와 에메랄드를 박은 수정 국자 …
호사로움의 극치를 달리는 이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1일 개막한 '터키문명전_이스탄불의 황제들'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유산이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유물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터키의 고대문명부터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사라진 오스만 투르크까지 장구한 시간을 만나는 역사 여행이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로에 있어 동서 문화가 만나 만개한 곳이다. 인류 최초로 철기 문명을 일군 히타이트 제국, 만지면 무엇이든 금으로 변하는 손을 가졌다는 미다스 왕의 나라 프리기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 불멸의 지위를 얻은 트로이가 터키 고대문명의 주역이다. 그 뒤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제국, 서로마 멸망 후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한 동로마제국에 이어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며 유럽을 긴장시킨 오스만 투르크까지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터키 문명을 살찌웠다.
전시의 중심은 오스만 투르크다. 제국의 황제인 술탄과 그의 궁정에서 쓰던 물품들이 특히 놀랍다. 칼날에 금으로 아랍어 문자를 상감하고 금으로 된 손잡이에 1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술탄 쉴레이만 1세의 칼, 자개와 거북 등껍질로 기하학적 무늬를 장식한 코란 보관함, 세수할 때 쓰던 은으로 된 주전자와 쟁반 등이 보여주는 세공 기술과 미감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오스만 투르크 이전의 유물들도 대단하다. 터키 고대 문명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기원전 1269년 경 히타이트 왕 하투실리 3세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가 맺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카데쉬 조약)을 설형문자로 새긴 점토판이 포함돼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 따른 헬레니즘의 영향은 그리스 신화를 묘사한 대리석 조각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로마 제국의 유산으로는 비잔틴 양식의 메달과 기독교 성물 등을 볼 수 있다.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면서 멸망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동방의 빛'이라는 뜻의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터키 수교 55주년, 터키 수도 이스탄불과 부산시의 자매 결연 10주년을 기념하는 교류전이다. 터키의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 톱카프궁박물관, 이스탄불고고학박물관, 터키이슬람박물관에서 150여점의 유물을 가져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9월 2일까지 하고 10월 8일부터는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들을 터키로 가져가서 선보이는 전시는 내년 5~8월로 잡혀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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