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업체들이 이를 악 물었다. 목표는 '타도 한국.'일각에선 "이미 무너진 터라 한국전자업체를 따라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지만 "일본이 작심하고 추격한다면 국내 업체들로선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사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전자업계는 일본의 독무대였다. D램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LCD에서부터 TV까지, 핵심 분야는 모두 일본 업체들이 주도했다. 글로벌 D램 시장은 히타치와 NEC 등에 의해 좌우됐고 소니ㆍ도시바ㆍ파나소닉 TV는 없어서 못 팔았다. LCD 패널 시황은 샤프 전략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90년대 초, D램 분야에서부터 미끄러지더니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선 TV와 LCD에서도 주도권을 내줬다. 공교롭게도 일본 업체들의 몰락 중심에는 삼성과 LG등 대부분 한국 업체들이 서 있었다.
현재 일본업체들은 절치부심, 극한(克韓)의 칼을 갈고 있다. 30일 일본 NHN방송에 따르면 일본 게이오대학 연구팀은 독자 플라스틱을 사용해 소비전력을 절반으로 억제하면서 화질이 뛰어난 LCD 패널 개발에 성공했다. NHK는 이 기술에 대해 "과거 일본의 독무대였다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업체에 뒤진 평판 TV 부분에서 재역전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고이케 게이오대 교수는 "평판 TV의 세계 시장 규모는 10조엔(약 104조원)에 달하는데 이번 기술이 일본의 역전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선명한 화상의 특수 필름도 개발해 화질도 높일 수 있게 됐다"며 "이 패널을 일본내 10여개 전자업체와 제품화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고이케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을 감안할 때 게이오대 연구팀은 초기 단계부터 한국 전자업체를 타깃으로, 이 제품 개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업체들을 타깃으로 한 일본 업체들의 치밀한 계획은 합종연횡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도시바와 소니, 히타치의 중소형 LCD 사업부문을 합친 재팬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켰다. 최근 디스플레이가 기존 PC 중심의 대형 LCD에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 위주로 빠르게 넘어감에 따라, 삼성 LG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적과의 동침'은 일본 내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샤프는 지난 달 대만 홍하이그룹과 손잡고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업체를 상대로 한 반격을 도모하고 있다. 홍하이는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전문 위탁생산 업체인 팍스콘과 세계 4위 대만 디스플레이 생산업체인 치메이이노룩스(CMI)의 모그룹이기도 하다.
물론 단기간 안에 한국을 추월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반도체의 경우 일본 유일의 메이커인 엘피다 자체가 해외매각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TV 역시 한국업체들은 LCD와 LED를 넘어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제품 대형화에 이미 성공하며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일본TV 업체는 글로벌 시장점유율에서 25.3%(소니, 도시바, 파나소닉 등)대 초반으로, 37.5%(삼성전자, LG전자)로 국내 업체와는 격차가 한참 벌어진 상황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기술격차 수준으로 볼 때, 당분간 일본이 한국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워낙 축적된 기술과 브랜드 파워가 높아, 본격적인 추격전에 나설 경우 국내 업체들도 안심할 수 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기업은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체질이 문제다. 만약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통해 조기 체질전환에 성공한다면 상당히 무서운 속도로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상용화된 기술로는 어렵겠지만 스마트폰 등장처럼 패러다임이 갑자기 변화되는 시기가 온다면 일본의 부활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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