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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 주인 된 노숙인 공동체 이끈 하재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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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 주인 된 노숙인 공동체 이끈 하재호 목사

입력
2012.04.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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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만 챙겨주는 정부정책, 보여주기 위한 활동으로 전락한 종교단체의 봉사활동…. 노숙자를 위한 대책이 절대 될 수 없어요.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입소자 수를 늘리는 노숙자 쉼터요? 노숙자가 아니라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한 몸부림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폭력과 마약 사건 등의 불미스러운 일로 1990년대 말까지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 했던 탓에 '깡패 목사'로 불리기도 했던 하재호(56) 대전 무궁화교회 목사가 책을 냈다. 가 책 제목이다. 노숙자 자립 지원 단체 '알멋공동체'를 이끌면서 느낀 소회를 일기식으로 쓴 글을 정리한 7년간의 기록이다.

99년 출소 후 독거노인 목욕봉사 등으로 사회에 진 빚을 갚아나가고 있던 그가 노숙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어려운 경제 탓인지 대전역 주변에 쓰레기통처럼 쭈그리고 있거나 술에 취해 길에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등 자활지원 단체도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노숙자는 줄지 않고 더 늘더라고요.'공짜'로는 이들을 길에서 일으켜 세울 수 없겠다 싶어 직접 뛰어들었던 겁니다." 2004년 대전 시내 모처에 개척한 교회에 노숙자 몇 명을 불러들인 계기다.

한때 '어둠의 자식'으로 살면서 그가 터득한 진리가 있다면 '다 큰 어른을 아이 다루듯 강제로 몰아세우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 다른 노숙자 쉼터와 달리 술도 마시게 했고 담배도 마음대로 피게 했다. 이 때문인지 식구는 금세 30명 가까이 늘었다. 그 사이 이들과의 관계는 원만해지는 등 개선의 가능성은 조금씩 보였지만 무위도식하는 근성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이대론 나도 부도나겠다 싶어 원칙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살려면 하루 500원씩 내라는 거였죠."

큰 형님으로, 때로는 아버지 같은 하 목사의 '요구'에 절반 이상이 뒤도 쳐다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노숙인이 주인인 고물상'알멋자원'를 떠올린 것도 그때였다. "구걸이 몸에 밴 이들을'직장인'으로 탈바꿈시켜 사회 궤도에 올려 놓으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겐 쓰레기지만 누군가에겐 돈이 될 수 있는 쓰레기를 줍게 했다. 처음엔 부끄러워 밤에만 쓰레기를 주워 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낮에도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스스로 숙식비 500원을 치르게 되자 표정도 밝아지고 하는 말에도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열패감에 젖어 살던 이들이 스스로 깨우친 거죠." 이들이 벌이가 늘자 하 목사는 숙식비를 1,000원, 2,000원으로 올렸다. 그는 "지금은 6,000원씩 받고 있다"며 "노하우가 쌓인 탓인지 이들의 하루 벌이는 8,000원 수준에 이른다"고 했다. 8,000원은 200㎏의 폐지를 모아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숙식비를 내고 남은 돈은 저축을 유도했다.

'알차지고 멋지게 살자'는 뜻으로 붙인 고물상 알멋자원을 거쳐간 노숙자는 150여명. 이 중 20명 정도가 독립해 번듯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노숙자 정책은 간단합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소규모 공동체을 만들고, 이 공동체를 통해 그들도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게 하면 됩니다. 현 정부의 노숙자 정책은 노숙자를 되레 늘리고 있어요."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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