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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바깥을 경영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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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바깥을 경영하는 집

입력
2012.04.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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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건축은 집을 미적 인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집 자체가 중요해 진다. 집을 어떻게 꾸미고 집안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서양건축의 핵심이다. 그러나 조선집에서 집은 미적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수많은 대상들 중에 하나 일 뿐이고, 그 대상들 간의 관계가 중요시 되었다. 조선집에서 집은 집 자체가 아니라, 그 집이 놓일 땅, 식생, 기후, 지형,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집은 집 그것이 아니라 그 집이 어디에 놓이는가가 더 중요시 되었다.

1800년께 만들어진 는 이러한 우리의 지리인식을 잘 드러내준다. 1770년에 편찬된 중 신경준이 집필한 의 '산천'을 보고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산의 흐름을 도표화하고 그 계보를 정리한 책이다. 그 내용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라는 뜻으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의 원리에 따라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 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大幹)과 정간(正幹)이라 하고,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까지를 한 개의 대간으로 보고(백두대간), 백두산에서 동북방향으로 뻗은 줄기를 한 개의 정간으로 본다(장백정간). 그리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물을 나누는 산맥을 정맥(正脈)이라 하고, 13개의 정맥으로 나누었다.

는 그 편집체제가 마치 족보와 같이 되어있어 백두산을 1세 할아버지로 친다면 대간의 남쪽 끝인 지리산은 123세 손이 되며, 호남정맥의 끝에 자리한 전남 광양의 백운산은 가장 길게 뻗어나간 줄기로 171세 손이 된다. 는 한 마디로 우리나라 산의 족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산에 의지하여 마을과 집을 자리 잡은 우리의 전통적인 도시계획과 건축은 도시와 집이 자리한 땅의 시원을 생각하고, 거기에서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려고 했다. 비록 의 성립이 1800년께 확립되었지만 이러한 자연관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다. 400년 이상 된 고가의 장서각에서 발견되는 두루마리에 표현된 간략한 는 집이 기대고 있는 산의 연원을 자세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집은 다 비슷하다. 평면구성에서는 한 칸이라는 모듈이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입면에서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과 가구식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등 부재의 결구 방식에서도 표준화된 방법들이 동일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조선집은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집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집이 앉은 자리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같은 땅은 없기 때문이다. 산지가 68%에 이르는 지형에서 산에 기대고 집이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산이 곧 집의 배경이고, 집이 성립하는 핵심이 된다는 말이다. 평지 지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른 논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집은 집안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집의 바깥을 재구성한다. 집의 바깥에 있는 산과 계곡을 집과 같이 엮지 못하면 집 자체가 성립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엮는 논리가 풍수지리임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앞산과 뒷산, 그리고 양옆의 산들의 관계를 엮고, 그것을 다시 집과 엮는 것이다.

집은 다시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에 의해서 그 외부와 관계를 맺고, 방과 마루와 부엌이 배치된다. 안채의 안방에서는 뒤란과 뒷산에서부터 그 다음 산으로 이어지는 산의 족보가 꿰뚫어지고, 사랑채의 방에서는 멀리 내다보이는 강이나 들판 건너의 안산과 시각적인 연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다시 아무것도 없는 빈 마당과 꽃나무들과 담장, 크고 작은 바위들과 일부러 자연을 축약한 석가산의 조성으로 이어진다. 방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작은 책상, 있다면 구석에 놓이는 작은 책꽂이 만이 있을 뿐이다. 지극히 단조롭고 간단한 방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거대하고 다채로운 자연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깥을 경영하는 조선집의 방법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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