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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차라리 공명첩을 부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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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차라리 공명첩을 부활하라

입력
2012.04.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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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동직자 조합인 길드는 상품뿐 아니라 사람도 생산했다. 길드의 정식 조합원인 장인들은 각자 견습공 겸 학생이라 할 수 있는 도제들을 거느렸는데, 도제들은 십수 년 간의 엄격한 수련을 쌓은 뒤에야 장인이 될 수 있었다. 도제가 장인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장인들에게 그 기능을 인정받아야 했다. 이런 동직자 조직은 바쿠후시대 일본에도 있었는데, 일본의 도제들은 수련이 끝날 때까지 결혼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균 초혼 연령이 30세를 넘었다고 한다.

길드는 조합원 자격을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내부의 경쟁 압력을 줄였고 조합원과 '돌팔이들' 사이에 확실한 수준차를 드러낼 수 있었다.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중세인들은 구성원 개개인의 수준이 집단 자체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적 계층분해와 산업의 기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길드는 해체되었으나, 그 전통은 현대의 전문가주의로 이어졌다. 전문가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으나, 그 핵심은 '특정 분야 전문가의 자격은 해당 분야 전문가만이 인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근래 전문가주의에 대해서는 전문성의 권력화, 자기 전문성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는 데 따른 통합적 비전의 결여, 대중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비민주성 등의 여러 폐단이 지적되고 있지만, 이를 당장 전면 해체할 수 있는 묘안은 아직 없다.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의사 자격 심사를 맡겨놓고 어떻게 안심하고 병원에 갈 수 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기본이 되는 전제가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옛 길드의 장인들처럼 '자기 구성원'들과 돌팔이들을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엄격한 자격 심사를 행할 것이라는 일반적 믿음. 전문가들 스스로 그 믿음을 배신하는 순간 전문가와 돌팔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된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도 도중(都中)이라는 동직자 조직이 있기는 했으나, 주로 상업 분야에서 만들어졌고 더구나 가입 자격도 대개 '입참비'에 따라 결정되었다. 어쩌면 폐쇄적 장인 단체들에서 엄격한 기능 심사를 하는 문화가 없었던 것이, 조선 산업의 근대화를 저해한 주요인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대신 문치(文治) 국가였기에, 사대부에 대한 자격 심사는 엄격했다. 일단 각 지방에서 치르는 초시(初試)에 합격해야 지식인 대접을 받았고,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복시(覆試), 전시(殿試)를 통과해야 했다. 조상 잘 둔 덕에 음서(蔭敍)로 관리가 되는 길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사람들의 출세길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관리가 된 뒤에도 다시 정식으로 과거를 치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재정이 곤궁해진 왕조 정부는, 사대부 자격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명첩(空名帖)'이라는 것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벼슬 받는 사람 성명란을 비워 둔 첩지(帖紙)였다. 스스로 원해서든 강요에 의해서든 공명첩을 산 사람은 빈 칸에 자기 이름을 직접 써 넣어야 했다. 가격은 물론 벼슬 품계에 비례했지만, 그 벼슬은 실생활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다. 죽은 뒤 위패에 써넣는 글자만 바꿀 수 있었을 뿐. 엄밀히 말하자면, 공명첩은 '돈 좀 있는 무식쟁이 인증서'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표절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표절을 적발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걸러내지 않은 학계에 있다. 전문가들이 공모하여 자기 집단의 평균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조선시대 공명첩을 산 자들은 토호 행세는 했을지언정 지식인 행세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표절 박사들은 그 학위를 가지고 교수도 하고 국회의원도 한다. 학부생 리포트를 그대로 베낀 논문까지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준할 양이면, 차라리 '공명박사' 제도를 만들었으면 한다. 그게 전문가 집단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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