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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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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비

입력
2012.04.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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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풍은 부드러운 여신을 데리고 왔다

청동을 적시었다 분수를 적시었다

제비의 깃과 황금빛 털을 적시었다

바닷물을 적시고, 모래를 적시고, 물고기를 적시었다

조용히 사원과 극장을 적시었다

이 조용한 부드러운 여신의 행렬이

나의 혀를 적시었다

L은 저와 무척 다릅니다. 저는 낯을 가리지만 상냥한 편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무뚝뚝합니다. 그는 술을 잘 하는데 저는 술을 못합니다. 그는 미녀를 좋아하는 눈치입니다. 저는 미남들이 별로예요. 우린 모든 게 달라요. 그런데 그가 좋아하는 시를 제가 좋아합니다. 우린 미학적으로 한통속이죠. 어제 저는 교도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편지를 주신 분은 신문에 실린 시들이 좋아서 매번 베껴 쓰며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략'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나오면, 찾아 볼 길이 없으니 힘이 쫙 풀린다고 해요. 그러니 제발 중략은 말아달라고. 그곳에서 온 편지라고 불쾌해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추신도 달려 있었습니다. S씨, 이 글 보고 계시죠? 편지 참 반가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를 당신도 좋아한다니 우리는 미학적으로 한통속인 걸요. 어디 있든 누구이든 비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운 시어들의 행렬이 우리의 마음을 평등하게 적셔 주니 말이에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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