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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하여튼 입만 살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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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하여튼 입만 살아 가지고

입력
2012.04.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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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꿈을 꿨다. 쫓고 쫓기는 그림자들 가운데 나는 쫓기는 자로, 뒤에서 쫓아오는 그 누군가에 잡힐까 다리에 쥐가 나도록 헐떡대며 뛰고 있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이부자리 위에서 깨고 보니 6시, 마치 초여름의 새벽녘 같은 느낌이라 얼음을 부숴 넣고 흔든 아이스커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잠이 든다는 것, 그리고 또 이렇게 깨어난다는 것…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지만 이토록 당연함에 의문을 품고 우아하고 감상적인 부인인 척을 할 때가 있다. 예컨대 오늘 같은 꿈을 꾸고 난 뒤에 말이다. 유독 쉽게 이 꿈의 연원을 타고 오른 데는 저녁나절에 본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요했던 것 같다.

열여섯, 열일곱 소녀의 대결로 압축된 K팝 스타의 최종 라운드를 지켜보다 1등과 2등이 가려지던 찰나, 함께 시청하던 가족들 앞에서 내가 뱉은 말이 이랬던 것이다. 난 누가 뒤에서 따라오는 게 젤로 소름 끼치더라. 체질이 딱 1등보다 2등이라니까.

잘하면 잘한다고 뭐라 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뭐라 하고. 언제든 넘어설 허들이 있고 언제든 올라설 의자가 있는 난 2등이 좋더라. 상금 3억 원에 부상으로 나온 자동차를 보며 쟤네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 저 돈을 어디다 쓰려나, 타던 차는 갖다 팔겠지? 연신 좋겠다, 좋겠다, 를 연발하는 엄마에게 혀를 쯧쯧 찼더니 돌아오는 말. 나 참, 누가 보면 너 전교 1, 2등 한 줄 알았겠다, 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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