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돈 때문일까요? 자아 존중감을 잃은 게 어쩌면 더 큰 원인일지 몰라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의 '삼포세대'로 불리더니 이제 '결혼불능세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 시대의 미혼. 결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직업이 불안정하다는 등 경제 문제로 이런 세태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26일 저녁 서울 성북구 종암동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모인 6명의 30~40대 미혼여성들은 "결혼이 두렵다"고 말했다. "가부장적 문화에서 결혼에 기대할 게 없다"고 했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 분위기에서 낮은 자존감 때문에 결혼을 못하겠다"고도 했다. 미혼이 많은 이유를 알아보자는 문제의식에서 공동체 예술가(지역운동과 예술을 결합한 활동가) 정원연(39·여)씨가 기획한 '주근깨 난 콩나물이 있는 수다방-눈맞춤의 기술'에서 내보인 미혼 여성들의 속내였다.
참가자 중 한 명인 연극연출가 김모(33·여)씨는 "여대 재학 중 비싼 화장품을 쓰고 명품 가방을 드는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 집 형편으로는 저렇게 할 수 없다'고 좌절한 경험이 있다"며 "여성이 외모로 경쟁하도록 부추기는 한국에서 돈과 여유가 없으면 여성성도 가꿀 수 없다는 생각을 한 후 결혼에 대해서도 소극적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학원생 김모(30·여)씨는 "현재 남자친구가 좋긴 하지만 우리 집 경제 사정이 더 어렵기 때문에 결혼 생각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집끼리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결혼한다면 차라리 집에서 정해주는 사람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부장적 문화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결혼의 장애물이다. 7년째 연애 중인 직장인 이모(30·여)씨는 "남자친구와 저 모두 일찍 결혼할 생각은 없는데 남자친구 어머니께선 당연하다는 듯이 먼저 결혼식 계획을 세우고 따르라고 해 부담스럽다"며 결혼에 거부감을 보였다. 심리상담사 최모(49·여)씨는 "유능했던 어머니가 결혼 후 6명의 자녀 뒷바라지만 하며 사는 것을 봤고, 장녀로서 다섯 동생을 돌봐야 했던 경험이 혼자 사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미혼자 비율은 실제로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남성의 미혼율은 30~34세가 49.8%, 35~39세는 26.9%다. 여성의 경우 30~34세가 28.5%, 35~39세가 12.4%였다.
모임을 기획한 정원연씨는 "적령기를 넘긴 주변 미혼자들의 공통점은 '나는 사랑 받고 안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눈맞춤의 기술'은 6월21일까지 매주 목요일 진행된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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