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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생태계 연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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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생태계 연구의 두 얼굴

입력
2012.04.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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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어린이들이 좋아하던 '마징가 제트'에는 '헬 박사'라 불리는 악당 과학자가 등장했었고, 또 다른 만화에 등장하는 평화의 사도 '아톰'을 만든 사람은 '강 박사'였다. 과학의 야누스적 두 얼굴이 어린이 만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한 분야인 생태학은 주로 선한 사람편인 동시에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학문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생태적 사고는 '여성적, 유기적'으로 이해되며, 이는 전쟁과 관련된 '남성적, 기계적'인 세계관과 대칭점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태계 연구 발전 과정을 보면 역설적인 일이 있었다. 생태계 연구에 큰 획을 그은 내용 중 하나가 무기개발, 그것도 핵무기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돼 진행됐던 일이다. 미국 정부 연구기관 중 하나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1943년 설립되어 초기에 핵무기 개발을 주도적으로 한 연구소다. 물론 이후에는 원자력 에너지 개발에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이 조직에서 생태계 연구에 중요한 성과들이 나왔다.

생태계 연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의 하나는 물질이 생태계 내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분포하는지를 따지는 문제다. 예를 들어, 생태계 연구자들은 식물이 흡수한 영양물질이 먹이사슬을 통해 어느 동물로 혹은 토양으로 이동하여 분포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핵 관련 연구를 수행하던 과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컸다. 즉, 핵폐기물이나 핵무기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이 생태계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축적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이 관심사가 일치하면서 오크리지 연구소에서는 생태계 내에서의 방사능 물질 이동 경로에 대한 대규모 연구가 이뤄졌고, 그 결과물은 생태계 생태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생태계 연구자 입장에서는 핵물질 관련 연구에 참여한다는 것이 껄끄럽기도 했겠지만 그들은 충분한 연구비와 시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알고자 했던 과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핵물질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물론 정부 관료도 자신들의 연구와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이는 생태학자들의 연구를 포용했고, 이 연구소를 환경과 생태계 연구의 메카로 발전시켰다.

이공계의 연구와 전쟁의 연관성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공학'과 관련된 기술 개발은 더욱 그랬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엔지니어'는 프랑스의 사관생도 교육이 그 뿌리라는 점, 토목공학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에 굳이 '민간인 공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만 보아도 그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근대 이전에는 신학이나 철학과 연관돼 발달한 자연과학도, 세계 1, 2차 대전을 겪으며 결국은 효과적인 인마살상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최초의 컴퓨터가 한 일이 미사일 탄도 계산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도 사실은 핵전쟁 이후에도 작동할 수 있는 연락체계의 개발에서 시작되었다. 또 우주 탐사를 위한 로켓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대륙간 탄도탄 개발이 그 원동력이었다. 자동차에 붙어 있는 내비게이션이나 '구글어스'와 같은 원격탐사 기술 개발의 초기 목적도 군사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독성학, 면역학, 미생물학도 세계대전을 겪으며 위협으로 등장한 세균전과 화학전 연구를 통해 급속히 발달했다. 현대에는 과학기술과 군사력의 결합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부 부처별 연구개발 투자에서 방위사업청의 예산이 13.5%를 차지해,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의 뒤를 잇고 있다.

생태계 연구가 인류의 복지에 이용되길 바라면서도 그 이면엔 또 다른 목적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대교 신화에 나오는 괴물 '골렘'의 이야기나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처럼, 우리의 의도에 따라 인간을 구할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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