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55) 전 파이시티 대표가 조성한 로비자금은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일까. 현재까지 검찰이 밝혀낸 액수는 21억여원이다. 2007~2008년 이 전 대표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전달해 달라며 브로커 이동율씨 계좌로 보낸 돈이다.
앞서 2010년 11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이 전 대표를 배임ㆍ횡령 혐의로 수사하면서 밝혀낸 횡령액은 334억원이다. 이 돈도 대부분 이 전 대표의 로비자금으로 쓰였을 것으로 의심된다. 실제로 이 중 현금 43억원과 180억원 상당의 시행사 주식이 우리은행 대출담당 직원에게 건네졌다.
하지만 부동산 개발사업 인허가에 사활을 걸었던 이 전 대표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마저도 일부에 불과하며, 로비 액수는 훨씬 더 컸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전 대표가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금은 1조5,000억원대에 달한다. 그중 상당액이 로비를 위해 사용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특히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전 대표가 2008, 2009년 토마토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1,200억원의 행방이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부산양풍저축은행으로부터 차명으로 6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부산양풍저축은행은 이후 토마토저축은행에 인수됐는데, 이 전 대표는 "개발이익만 1조원이 넘는 대형 사업"이라며 신현규 토마토저축은행 회장을 설득해 2009년에 추가로 60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돈은 파이시티의 공식 회계로 처리되지 않아 파이시티 법정관리인도 최근까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차명으로 대출돼 금융감독기관에 의해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돈이다. 이 돈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이 전 대표가 마련한 로비자금의 또 다른 '저수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현재 1,200억원 대출 과정에서의 불법성 여부와 사용처를 파악 중이다. 특히 대검 중수부는 이 전 대표가 이 돈을 대출받은 시기가 건축허가를 받지 못해 사업이 지체되면서 채권자들의 압박에 시달렸던 때라, 그 상당 부분이 인허가 로비를 위해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와 별도로 파이시티 채권단이 지난해 5월 이 전 대표 등 전 경영진을 상대로 1,29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지출내역이 불분명하다고 밝힌 929억원 역시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법원 조사위원인 회계법인 관계자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 대표 등이 관계사 등에 부당하게 대여한 자금이 668억원, 사업 인수와 관련해 부당하게 지출한 자금이 252억원에 달한다. 파이시티 김광준 법정관리인은 27일 "문제의 돈은 대부분 이 전 대표가 바지사장을 내세운 업체에 지출됐다"며 "정황상 관련 기관 등에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 전 대표의 비자금은 단순 계산상으로 최대 2,500억원에 달할 수도 있는 셈이다. 검찰도 "비자금 중에서 상당액이 로비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대검 중수부가 지난 25일 곽모 전 파이시티 자금담당 상무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도 비자금 출처 규명이 목적이었다. 이 전 대표와 같이 대우그룹 출신인 곽 전 상무는 이 전 대표의 자금 출처 및 사용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전 대표가 브로커 이씨에게 줬다고 스스로 밝힌 61억원을 훨씬 넘어서는 로비 자금이 수사 진행에 따라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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