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사태'가 중국 정치 개혁의 결정적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 내 개혁파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낙마를 정치와 헌법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7일 전했다. 티머스 가튼 애시 영국 옥스퍼대 교수는 최근 베이징을 방문하고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보시라이 사태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중국의 레닌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변화할 가능성 때문"이라며 "변화가 일어난다면 지금 세계 어떤 곳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21세기를 규정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1989년 톄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큰 공산당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보시라이 사태가 공산당 개혁의 역사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인, 치정, 호화생활, 도청 등 날마다 터져 나오는 보시라이 일가의 추문은 공산당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공산당 지도부의 균열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동시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위시한 공산당 내 개혁세력의 목소리를 키우고 보시라이를 후원한 개혁 반대파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치적, 헌법적 개혁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이 개혁의 적기"라며 "원자바오 총리가 개혁을 강하게 추진해 내년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청리도 "중국의 입헌주의 토론에서 보시라이 사태가 티핑포인트(임계점)가 되고 있다"며 "몇 달이나 몇 년 안에 개혁이 완수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지만 지금은 개혁을 밀어붙일 때"라고 말했다.
원 총리를 잘 아는 인사들은 중국 정치 개혁 방안으로 마을 선거를 점진적으로 확대시키는 방안과 사법부를 당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 등을 꼽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한 중국 정치 전문가 수잔 서크는 "가을로 예정된 1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 선출을 놓고 제한적 투표가 실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산당 내 개혁 반대파의 변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보시라이를 후원했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정치국 상무위원 9인에 속하는 저우융캉(周永康), 우방궈(吳邦國), 리창춘(李長春) 등은 '서구식 민주주의'에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들과 가까운 한 인사는 "원 총리와 생각이 다르고 개인적 적대감도 있지만 정치적, 헌법적 개혁을 제도화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있다"고 전했다. 한 공산당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는 법을 만드는 공산당이 법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라며 "이런 체제는 지속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애시 교수도 보시라이 실각이 중국 정치 지도자와 정책에 변화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베이징을 방문하는 동안 정치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주의 성향의 학자나 학생뿐 아니라 공산당 교육기관이나 관영방송국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며 "공산당의 손상된 평판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뭔가 결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밝혔다. 그는 한 사업가의 비극적 죽음으로 시작된 사건이 중국의 변화로 마무리된다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놀랄 만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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