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김경일 지음/바다출판사 발행ㆍ390쪽ㆍ1만7800원
한문 공부 좀 했다는 이들 중에는 여전히 김경일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유교를 어지럽힌다고 욕하는 소리다. 중국 고대문자를 연구하는 대학교수에 대한 지칭으로는 제3자가 듣기도 심히 불편하다. 하지만 10여년 전 그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는 책을 내고 겪은 일에 비하면 양반 대접이라고 해야 할까. 공자가>
그때는 유교 관련 단체나 개인이 연일 협박편지와 전화를 해댔다. 유교가 나라 망친다는 책 내용에 대한 불만, 분노, 적개심이 넘치다 못해 죽이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나왔다. 어떻게 죽일 것인가를 상세히 설명하는 전화도 있었다고 한다. 명예훼손 등을 주장하는 5건의 소송이 제기됐고 한 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모두 무혐의였다.
그가 <공자가…> 정도는 아니지만 또 상당히 도발적인 책을 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 는 많은 한학 연구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고전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다. 고대 중국의 갑골문과 청동기 문자, 죽간까지 섭렵해, 고전에 등장하는 한자의 처음 뜻이 무엇이었는지, 그 고전의 주인공들이 활동하던 시대의 뜻은 지금의 일반적인 해석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공자가…>
그런데 당황스럽다. 해석이 너무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논어의 첫 문장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고금의 어떤 대가도 '학'을 '배우다' 이외의 뜻으로 해석한 경우가 없었다. 유교 경전 해석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주희도, 주희를 비롯해 다른 동아시아 학자들의 해석을 비교 검토한 뒤 독창적으로 사고한 정약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 교수는 '왕실 제사를 진행하는 궁궐 학에서 제례 절기에 따라 제반 절차를 실제로 실습하는 과정,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로 풀이한다. '학'을 특정한 공간을 뜻하는 명사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상나라의 글꼴과 그 뒤를 이은 서주, 춘추, 전국시대까지 '학'의 쓰임으로 해석을 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논어가 공자의 말이 맞다면 그가 활약했던 게 춘추시대이니 일리가 없지 않다.
이런 식으로 그는 <주역> 의 '원형리정(元亨利貞)'을 '좋은 말은 다 모아 놓았지만 논리적으로 이어놓을 수가 없다'며 '상나라 때 점괘를 잘못 베껴 쓴 결과'라고 지적하고, <노자> 의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는 당시의 사투리 교류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태곳적부터 있었다고 흔히들 아는 '음양(陰陽)' 역시 전국시대까지는 응달과 양달이라는 뜻밖에 없었고, 동양의학의 근간인 '오행'(목화토금수)도 진, 한을 거치기 전까지는 인체와 결부되어 추상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고사하고 다섯 글자가 고루 등장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책은 이런 식으로 중국 고전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나 동양철학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전복시킨다. 그의 치밀한 고증과 독창적인 글자 해석은 독서욕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노자> 주역>
하지만 그가 '동양 고전 속에서 인간의 가치나 정신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 딴지 걸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고전의 글자들이 처음 생겨나고 쓰이던 시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해, <논어> <노자> <주역> 등에서 동양문화 속의 핵심 가치를 찾는 일이 실은 중화사상이 오랫동안 만들어낸 해석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일 뿐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출간 직후 김 교수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주역> 노자> 논어>
-'학이시습지'의 '학'을 제례 공간으로 해석한 것은 너무 파격적이다.
"그 대목은 3년 전 논문으로 발표했던 것을 쉽게 소개한 것이다. 어떤 고전이든 우리가 해석하고 싶은 것과 무관한 그 시대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논어 같은 경우 지금 통용되는 해석이 당시의 의미와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뜻은 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작용해 왜곡된 해석일 가능성이 있다. 논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자 중 하나인 인(仁)은 갑골문이나 청동기에 나오지 않고 죽간도 다 뒤져봤지만 없다. 공자가 활동했다는 춘추시대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논어가 공자의 말인지도 실은 의심스럽다."
-중국이나 일본을 포함해 다른 학자들 가운데 비슷한 주장을 펴는 사람이 있는가.
"국내에는 없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은 없지만 학자 중에 논어가 공자의 말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있다. 중국 학자들은 사적으로 학술 교류를 해보면 공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글에서 중국 문화가 상나라나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중국인 일반의 생각, 즉 중화사상의 이데올로기 틀에 맞지 않는 이론 펼치기를 꺼린다."
-여전히 유교에 대해 반감 있는 사람으로 비칠 것 같다.
"유교를 파헤쳐서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는 없다. 단지 학문적인 호기심이다. 고문자학, 판본학의 사명은 텍스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그 텍스트가 그 시대에 맞는지 아닌지를 규명할 뿐이다. 논어의 경우도 거기 쓰인 글자나 그 용법이 동시대 다른 텍스트에 있는지 살핀다. 없다면 둘 중 하나다. 공자가 한 말이 아니거나 공자가 그 시대에 쓰지 않는 다른 문체나 어법으로 말했거나. 물론 후자는 억지다."
-한문 고전 안다는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유교 연구하고 한문 고전 읽는 사람 층이 아주 두텁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동양 고전을 다시 읽고 제대로 읽어야 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그 텍스트가 아니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텍스트를 제대로 보고 그 위에서 놀아보라는 것이다."
그는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유교가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추적한 <유교의 기원> 이라는 책의 원고를 최근 탈고했다"며 "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 는 그 책의 접근법을 따르되 학술적인 연구의 극히 일부만을 대중적인 에세이로 녹여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갑골학 박사 1호인 그가 10년 가까운 대만 유학까지 포함해 30년 공부의 결산으로 연말께 내놓을 <유교의 기원> 에서 어떤 주장을 펼쳐 놓을지 기다려진다. 유교의> 나는> 유교의>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사진=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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