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해 25일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신속수사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검찰은 다음 주 중 박 전 차관을 소환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우선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가 2008년 1월 박 전 차관에게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전달해 달라며 브로커 이동율씨의 계좌로 보낸 10억원의 행방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이 돈을 2007년 5월 매입한 서울 용산구 신계동 재개발주택과 부지 대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08년 5월 청와대 비서관 재산 공개 당시 "형님으로부터 3억원을 빌려 일산의 기존 집을 판 돈에 더해 구입했다"고 한 박 전 차관의 해명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돈 전달 시점이 박 전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으로 재직하던 때여서, 이 돈이 대통령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신병 처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 부분을 포함, 박 전 차관 소환 조사에 필요한 압박 카드를 최대한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이 2007년 박 전 차관으로부터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사실이 있었다고 인정한 부분도 서울시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사실 확인에 들어간 상태다.
검찰은 또 2007~2008년 이 전 대표로부터 지속적으로 박 전 차관에게 돈이 건네진 정황을 상당 부분 파악해 놓은 것으로 알려지는 등 소환 조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개 수사 일주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비교할 때 박 전 차관 수사는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단 브로커 이씨로부터 진술을 받아내는 데 수사팀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박 전 차관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이씨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이씨는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금품 전달을 시인했던 최 전 위원장의 경우와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씨의 입을 열 수 있는 결정적인 카드가 없다는 점도 수사팀이 풀어야 할 숙제다. 최 전 위원장의 경우 "이동율씨가 이 전 대표의 돈을 최 전 위원장에게 줬다"는 이씨의 운전기사 최모씨의 진술에다 그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요구하며 보낸 편지와 사진을 확보한 것이 수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수사팀이 "최 전 위원장과 달리 박 전 차관 소환 후 바로 신병 처리가 가능한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이유다. 검찰이 박 전 차관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와 계좌추적에서도 현재까지는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잠적하다시피 한 박 전 차관의 최근 행적을 볼 때 스스로 금품 수수 사실을 시인한 최 전 위원장처럼 혐의 인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전 차관은 자택 압수수색 현장을 지켜본 후 다음날인 26일 새벽 짐을 챙겨 서울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언론 취재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적극적으로 인허가 청탁과 금품 수수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자진해서 인정하지도 않겠다는 제스처인 셈이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찰 간부는 "박 전 차관 소환 전까지 며칠 동안 검찰의 증거 확보가 이번 사건 수사의 고비"라고 분석했다.
한편 25일 실시된 박 전 차관의 사무실과 자택 압수수색에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윤희식)도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조세조사3부의 압수수색은 카메룬 광산개발업체인 CN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박 전 차관의 연루 의혹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을 재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과 함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까지, 3개의 수사팀에 의해 한꺼번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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