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부지에 들어설 복합상업시설인 파이시티 측의 전방위 인허가 로비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인허가 과정에 편법을 동원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 공무원들이 주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지만 서울시 정무라인의 압력을 받은 실무 직원들이 적극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서울시는 법 규정상 유통업무설비에 업무시설을 넣을 수 없는 데도 파이시티에서 기존에 있던 업무 시설(6.8%)의 비중을 20%로 대폭 상향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8월 22일 열린 제 13차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한 위원이 유통업무설비로 묶여 있는 트럭터미널 부지 내에 업무시설을 넣을 수 있는지 물었다. 서울시 실무자들은 즉답을 하지 못했고 위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그제서야"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현행 '도시계획 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통업무설비 내에는 부대시설의 사무소만 설치할 수 있다. 이에 이날 심의위원회에서는 오피스텔 등의 업무 시설을 부대시설의 사무소로 둔갑시킨 꼼수가 아니냐는 위원들의 지적이 나왔다. 또 한 위원은"수 차례 도시계획 심의위원회에 참석 했으나 서울시 관계자들이 이처럼 당황해 하는 경우를 본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울시는 업무시설을 부대시설상 사무소로 해석했다. 업무시설 비중을 높이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부대시설 사무소는 유통시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무실로 통상 해석된다. 이를 업무시설로 해석해준 경우는 아직 없다"고 말할 정도다. 결국 업무시설은 20%로 대폭 높아졌다. 수익률 향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당시 평당 1,700만원 선이던 부지 가격이 무려 2,000만원까지 올랐다.
꼼수가 동원된 서울시의 세부시설변경 허가
서울시의 이해할 수 없는 조치는 이뿐이 아니다. 2004년 트럭터미널의 소유권을 확보한 ㈜경부종합유통(파이시티의 전신)은 같은 해 9월 서초구청에 부지에 대한 세부시설 변경을 신청했다. 2005년 11월 서초구청으로부터 이를 접수 받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에서 관련 부지가 경부고속도로 양재 IC 인근으로 잘못하면 수도권에 교통 대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의 자문 위원으로부터 제기됐다. 이 자리에는 당시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도 위원으로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세부시설 변경 건만으로 사안을 검토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심의를 통해 문제를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들은 관련 법을 들어 "유통업무설비 내에 세부 시설을 바꾸는 것은 '경미한 사항'으로 자문만 받아도 된다"고 주장하며 이 같은 의견을 묵살했다. 심의는 안건의 통과 또는 부결을 결정하지만 자문은 통과를 전제로 미세조정을 하는 절차다. 서울시 관계자들이 사안의 중대성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면서도 자문만을 거쳐 세부시설 변경을 허용했다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서울시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6년 5월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세부시설 변경결정고시를 통해 잔여부지(1만4000평)까지 통합 개발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터미널(10만4,500여㎡) 보다 훨씬 더 큰 복합유통단지(점포 12만6,000여㎡, 업무시설 23만4,000여㎡, 교육ㆍ연구소 14만1,000여㎡)가 들어서게 된 것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정무 부시장으로 재직했던 정태근 의원(무소속)은 "파이시티와 관련해서는 국실장 정책 회의 때 한번도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며 "도시계획국과 행정2부시장이 처리할 문제였지 정무부시장으로서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파이시티 개발을 둘러싼 배경 논란
파이시티 이정배 대표가 서울시 인허가와 관련된 사전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2006년 11월 파이시티 이정배 대표는 2006년 11월 당시 여기 저기에 "트럭버스터미널 부지가 45층 건물이 들어서는 고급 쇼핑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춘 센트럴시티와 유사한 복합화물 터미널로 거듭날 것"이라고 장담하고 다녔다. 건축 심의가 통과 되기도 전에 건물의 층수 및 규모를 언급한 것이다. 이 대표와 친분이 있는 한 부동산 개발 전문가는 "당시 이 사장이 파이시티에 대기업을 비롯해 한국마사회, 국민연금기금 등의 입주를 보장받은 듯이 말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검찰의 요청에 따라 26일 파이시티 도시계획위원회 인허가 승인 의사록 등 관련자료를 제출했으며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명단 공개도 검토하고 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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