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ㆍ69) 전 민주당 대표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집권당인 민주당내 최대 계파를 거느린 정치 거물에 씌워진 족쇄가 벗겨지자 ‘오자와 차기 총리설’이 나도는 등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도쿄지방법원은 26일 “오자와 전 대표가 4억엔을 2004년 정치자금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것과 관련, 허위기재의 고의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없는데다 회계담당자와 공모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며 판결했다.
27세에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 14선째인 오자와 전 대표는 47세에 당시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을 지낼 정도로 실력자로 성장했다. 그는 1993년 당내 입지가 좁아지자 탈당, 신생당을 결성하는 등 정치생명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탈당과 창당을 거듭하며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특히 2003년 자신이 이끌던 자유당과 민주당을 합병, 2006년 당 대표에 취임했고, 2009년 민주당이 자민당을 누르고 집권당으로 등극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민주당내 가장 유력한 총리 후보로 점쳐지던 오자와 전 대표는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발목이 잡혔다. 검찰은 오자와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단체인 리쿠잔카이(陸山會)가 2004년 오자와로부터 받은 현금 4억엔을 정치자금수지 보고서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4억엔의 출처가 뇌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벌였으나 혐의를 찾지 못했고, 결국 2009년 불기소처분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이 수사를 중단하자, 이번에는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나섰다. 2009년 도입된 검찰심사회는 검찰이 내린 불기소 사건에 대해 강제 기소를 할 수 있는 제도. 검찰심사회는 오자와의 비서가 검찰 수사에서 오자와의 혐의를 인정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을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으나, 법원은 이를 검찰이 허위진술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기각했다.
오자와 전 대표가 면죄부를 받으면서 당장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추진중인 소비세 인상문제가 난항을 겪게 됐다. 오자와 전 대표는 줄곧 소비세 인상에 반대입장이어서 의회 표결에서 오자와 그룹이 반대표를 던져 소비세 인상을 무산시키면 노다 총리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오자와 전 대표에게 내려진 당원자격 정지를 둘러싼 공방도 예상된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부총리 등 반 오자와파는 “이제 1심이 끝났을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당원자격을 회복시키지 않으면 자칫 당내 분열의 화근이 될 수도 있다.
일본 언론은 “오자와 전 대표가 평생 처음이자 최후의 총리직에 도전할 지 여부도 관심”이라며 “수십년간 일본 정치를 휘저은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 국민의 신뢰를 얼마나 회복하느냐가 최대의 관건”이라고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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