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안시성의 패장으로 기억되는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에선 역사상 최고의 군주로 꼽는 데 이론이 없는 인물이다. 안으로는 수 왕조의 혼란을 수습한 '정관의 치'로, 밖으로는 거침없는 정복군주로 '황제 중의 황제'란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결정적인 흠결이 있었다. 아버지 이연이 후계자로 택한 형 이건성과 동생까지 무참하게 살해하고 황위를 찬탈한 이른바 '현무문의 변(變)'이다. 물론 동생의 걸출함을 시기한 형의 원죄가 컸기는 해도.
■ 형제들을 잔인하게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조선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도 비슷한 구도다. 이 역시 정몽주를 참살, 조선 개국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도 아버지의 최측근 정도전의 견제에 밀려 개국공신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채 찬밥신세가 된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세민과 이방원 모두 스스로 피해자임을 명분 삼았을 뿐 사실은 타고난 권력의지를 실현했을 뿐이었다. 권력 앞에서 형제의 혈연은 남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권력과 부를 다투는 형제간 반목이 유난한 이유에 대해 <타고난 반항아> 의 저자 프랭크 설로웨이의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그에 따르면 가정은 행복의 요람이 아니라 형제들이 부모의 보살핌을 놓고 각자 자기의 지위를 찾아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글이다. 형제간 다툼은 진화생물학적으로 필연적 현상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는 형은 보수적 기질이 두드러지는 반면, 동생들은 모험적이고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 삼성가의 후계 결정과 이후 발전과정, 기질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건희가 어린애 같은 말을 하고"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에선 타인 이상의 깊은 분노와 적개심이 드러난다. 하긴 LG나 GS, 효성 정도만 빼곤 우리 대기업의 상속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골육상쟁을 겪지 않은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도 국가브랜드 기능을 하는 삼성쯤이면 안팎의 이목을 생각해서라도 차마 이런 모습까지 보이진 말았어야 하는데….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