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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아이스하키 디비전 1 B그룹, 우승 주역 박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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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아이스하키 디비전 1 B그룹, 우승 주역 박우상

입력
2012.04.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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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상(27)은 지난 22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폴란드 크리니카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B그룹 대회 시상식에서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국제 대회에서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를 들으면 울컥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옆에 있는 후배 이돈구(24ㆍ한라)는 애국가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폴란드와의 최종전(3-2) 도중 무릎을 다친 김현수(28ㆍ하이원)도 눈물 범벅이 됐다. 박우상은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기 싫다는 마음에 해외로 나갔다. 6개월 만에 대표팀에서 동료들과 해후했고, 디비전 1 B그룹대회 정상에 서는 꿈 같은 경험을 했다. 마지막 무대로 삼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뻤다.

영국 무대 첫 진출한 하키 신동

박우상은 '하키 신동'이었다. 친구 김기성(27)과 홍익초-경성중고-연세대-안양 한라까지 한솥밥을 먹으며 각종 대회와 개인상을 휩쓸었다.

해외 진출은 고교 시절부터의 꿈이었다. 2010년에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바로 아래 단계인 AHL의 한 구단으로부터 테스트 제안이 왔다. 마침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해 어깨 수술을 받았고 스틱에 맞아 코뼈가 8조각으로 부서지는 경험도 했다. 후일을 기약하며 테스트를 포기했다.

지난해 여름 소속 팀 한라에 해외에서 꿈을 펼치겠다는 뜻을 전했다. 스웨덴, 핀란드 등에 입단을 타진했다. 반응이 없었다. "미국, 캐나다 선수들이 넘쳐나는데 왜 동양인 선수를 쓰겠느냐"는 냉소적인 얘기도 들었다. 어렵게 10월 영국 리그 코벤트리 블레이즈에 입단했고 45경기에서 7골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한국 아이스하키 공격수 가운데 해외로 진출해 풀 시즌을 소화하기는 박우상이 처음이다.

6개월간의 험난했던 이방인 생활

영국 생활은 험난했다. 시야를 넓히고 싶어서 자처한 고생이었기에 감내했다. 구단 숙소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했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고추장찌개를 끓였는데 냄새 때문에 자던 동료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한식을 접었다. 코벤트리에는 한식당은 물론 한국 사람도 없었다.

연봉은 한국에서 받던 20% 수준. 용품 지원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스케이트 날이 휘거나 스틱이 부러져도, 바이저 앞이 긁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도 참고 기다려야 했다. 참다 못한 감독과 코치가 스틱을 사기 위해 자리을 비우고 핀란드까지 출국하는 황당한 일마저 경험했다. 한국 실업 팀보다도 구성원이 적었고 부상 선수가 생기면 그 선수 몫만큼 빙판에 더 나서야 했다. 8시간이 넘게 버스로 이동한 후 곧바로 경기에 나서 30분 넘게 활약한 경험(아이스하키 공격수의 한 경기 출전 시간은 통상 20분을 넘지 않는다)도 있다.

그러나 많은 관중 앞에 설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노팅엄 같은 곳에서 열리는 경기에서는 관중이 5,000명이 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해 8,000명이 넘는 팬이 온다는 곳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 아시아리그에서는 관중이 많은 곳도 2,000명 남짓이다. 야구 선수가 부러운 유일한 이유가 매일 많은 관중 앞에 설 수 있다는 점이다.

평창 올림픽에 나가고는 싶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서는 꿈을 그리지 않았을 리 없다. 이번에 디비전 1 B그룹에서 우승한 것도 선수들이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IIHF 관계자들, 그리고 국민과 정부 관계자들에 한국 아이스하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단단히 마음을 모았다고 한다.

그는 2018년이면 33세가 된다. 외국의 경우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그는 올림픽과 관련한 질문에 말 끝을 흐린다. 병역 문제가 걸려 30대 선수가 나오기 힘든 현실 탓이다. 2년의 공백은 아이스하키 선수에게는 치명적이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선수라도 종목 특성상 2년간 빙판에 서지 못하면 경기력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그는 "스스로가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을 맞느니, 미련 없이 스케이트를 벗겠다"고 말한다.

부상을 달고 산 것도 그가 평창 출전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수술대에 여섯 번 올랐다. 지금도 오른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니고 쇄골 부상으로 팔 굽혀 펴기를 하지 못한다.

박우상은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AHL과 ECHL 같은 북미 쪽 하부리그에 도전하는 것이 목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한라로 컴백한다. 우리나라가 좋은 줄을 타지 생활을 통해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선수들의 스피드와 스케이팅에는 유럽이 놀란다. 체력적인 부분을 보완하고실전 경험을 늘리면 세계 수준과 격차를 더욱 좁힐 수 있다. 국제 경기 기회를 좀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국가대표로서의 소망을 밝혔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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