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 '은교'가 촬영에 들어간다 할 때 충무로는 잠시 떠들썩했다. 박범신의 동명 원작소설 속 노시인 이적요(박해일)의 마음을 훔치는 여고생 은교를 누가 연기할 것이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은교는 여고생의 청초함을 지니면서도 노시인과 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 사이를 갈라놓는 관능미를 동시에 풍겨야 하는 난이도 높은 역할. 원작에서 묘사된 파격적인 정사 장면을 감당할 담력도 필요했다. 결국 신인 김고은이 발탁됐다.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26일 개봉하는 '은교'를 본 관객들은 적어도 새로운 별의 탄생을 목도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할 듯하다. 순수와 농염을 오가며 두 남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김고은(21)의 빼어난 연기로 소설 속 은교는 스크린에서 실존을 얻는다. 대형 배우로 성장하리란 예감이 든다.
24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를 찾은 김고은은 봄 캠퍼스를 산책하다 온 듯 풋풋한 기운이 넘쳤다. 여린 외모에 의외로 강단이 어려 있었다.
김고은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은교가 됐다.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선배(지금은 소속사 대표가 됐다)의 추천으로 정지우 감독을 만났다. "감독이란 분을 처음 만나 호기심이 넘치던" 90분 가량의 자리를 마칠 무렵 다음날 오디션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대학 입시를 위해 연습했던 독백 연기 내용으로 2시간 가량 오디션을 보았고 바로 출연 제의가 이어졌다.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너무 갑작스러웠던" 김고은은 사흘간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정말 큰 걱정은 역시 노출에 대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은교를 연기하는 배우는 누구든지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역이 제게 온 거죠. 훌륭한 감독님과 배우 사이에서 제가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무엇보다 노출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너무 조급하게 배우 데뷔를 하지 말자"는 예전의 다짐도 고민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2학년 지나면 독립영화 찍으며 연기력도 키우고 그런 뒤 소속사를 찾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한예종에 진학한 것도 2년 동안 외부 활동을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은교'는 노출이 전부인 작품은 아니지만 여전히 김고은의 노출이 화제인 영화다. 김고은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으나 (정사 장면) 편집본을 보고선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당당해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감독님과 대화를 참 많이 나눴는데 '우리 영화가 잘되면 너는 뜰 거지만 안 되면 나락으로 떨어질 거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겁이 확 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노출)연기를 했어요."
김고은은 어려서부터 배우의 꿈을 품었다. "꼭 봐야 할 영화라며 설명까지 곁들여주시던" 부모님 영향이 컸다. 그는 "초등 5학년쯤 본 중국 첸카이거 감독의 '투게더'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계원예고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고, 한예종으로 연기 학업이 이어졌다. 영화광 부모님의 '은교'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김고은은 "엄마와 함께 시사회장을 찾은 아빠가 '고생했다. 잘했다'며 너무나 밝은 표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중국에서 10년 동안 살아 중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해외에서도 활동할 수 있겠다"는 물음에 수줍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난처한 질문에 얼굴이 금세 불거지는 그는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도연 선배님 존경하고 탕웨이와 메릴 스트립을 좋아해요. 인기요? 거기에 연연하다 보면 저 아닌 모습을 자꾸 보여줘야 하잖아요. 저는 어느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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