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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문대성에 대한 대학 사회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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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문대성에 대한 대학 사회의 침묵

입력
2012.04.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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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여전히 잘 팔리지 않는다.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니 가끔 출판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난국을 타개할 저마다의 묘책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경우가 있다. 내가 아는 한 선배 출판인은 이럴 때마다 이제는 출판인 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와 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물론 현역 국회의원 중에는 출판계와 직간접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던 분도 있고 출판 산업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분도 있다. 그러니 이리도 출판계가 어려우니 출판 산업의 현장에 놓여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잘 아는 사람이 직접 나서서 단번에 그 주요 문제들을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물론 그 한 명의 국회의원이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또 가능하다고 한들, 그가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현장의 구체적인 목소리가 정치적인 입법 활동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그만큼 절실한 것이다.

이는 비단 출판계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여러 산업 현장 혹은 여러 문화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은 현장의 생생한 문제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국회에 진출해서 자신들의 구체적인 이익을 대변하고 이를 위해 단단하게 싸워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가 있지만 현재 각 직능 대표성과 정책 전문성을 효율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생각해보면 국회라는 곳이 그런 곳이고 정치라는 행위도 그런 것이다. 서로 갈등하는 수많은 이해 관계의 충돌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타협점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일이 정치에 다름 아니다.

아마 체육계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선수 출신 문대성 씨의 새누리당 공천이 확정되었을 때 많은 체육인들은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의 성공을 위해서 박수를 치고 그의 당선을 기원한 많은 체육인들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래서 문 당선자의 학위 논문 표절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그들이 느낀 상실감은 사실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번 사건에 대해 체육계가 이렇듯 오래 침묵하고 있는 것은 전혀 올바르지 않지만,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대학 사회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대성 사건의 본질은 무자격 공천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무자격 박사 학위 수여, 그러니까 박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일이고, 무자격 교수 채용, 그러니까 교수의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교수의 직위를 부여한 일이다. 박사 학위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학위를 줬고 교수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교수의 자리까지 주었는데, 알고 보니 박사 학위의 자격조차 없는 사람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대학의 존립 근거를 뒤흔드는 엄중한 과오이다. 그에게 학위를 수여한 대학, 그리고 그를 임용한 대학이 모두 이 과오의 당사자이다. 그런 표절 논문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면 학위 논문 지도와 심사 과정은 어땠을 것이며 임용 과정은 어땠을 것인지, 그리고 그의 학생 지도는 어땠을 것인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학 사회는 무기력하게 정치적 힘겨루기의 뒤편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인상이다. 등록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부지런히 입장 표명을 해오던 대학 총장들도 무슨 얘기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남의 지식을 함부로 도용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범법 행위이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표절 행위는 대학 그 자신의 존재 근거를 위협하는 자기 파괴 행위이다. 표절은 대학의 자살이다. 이번 문 당선자의 파문에 대해 대학 사회가 이렇게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학에서 큰 비명이 터져 나왔어야 했다. 상처를 입고도 피를 흘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그렇게 우리의 대학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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