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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 배후 조종 '닉슨의 남자' 찰스 콜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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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 배후 조종 '닉슨의 남자' 찰스 콜슨 사망

입력
2012.04.2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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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배후 조종했으나 나중에 과오를 회개한 뒤 복음주의 목사로 변신하며 극적인 인생 반전을 이룬 찰스 콜슨(80)이 2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이노바 페어팩스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0세.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 1972년(당시 40세)은 콜슨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꾼 분수령이 된 해였다. 삶의 전반기 콜슨은 모사와 술수를 마다하지 않으며 '마키아벨리적 인생'을 살았다. 48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 자원봉사를 통해 정치계에 발을 들인 콜슨은 68년 리처드 닉슨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해 그의 당선을 도왔다.

닉슨 취임 이후 그는 특별 보좌관을 맡으며 '대통령의 복심'을 자처했다. 백악관에 위협이 되는 정치인, 언론인, 시민운동가의 명단을 작성했고 이들에게 정치공작을 서슴지 않았다.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염문설을 흘렸고 베트남전 기밀 서류 유출자로 의심받던 대니얼 엘스버그 국방장관의 신상기록을 뒤졌다. 나중에 스스로를 묘사했던 것처럼 그는 '닉슨의 망나니'였다. 대통령을 위해 손에 피를 묻혀야 할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는 의미다.

워터게이트 사건에도 개입했다. 비밀공작팀이 72년 6월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했다 발각된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이듬해 공직에서 물러났다. 74년에는 엘스버그 장관 사찰 사건과 관련, 사법방해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기에 이른다. 당시 그는 혐의를 인정하지 말라는 변호사 조언에도, 새 삶을 살겠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7개월 수감생활을 끝낸 후, 사악한 천재로 불리던 마키아벨리스트 콜슨은 종교에 투신하며 열정적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76년 라는 책에서 권모술수에 집착한 과거를 회개한 그는 재소자 교화와 선교 운동에 모든 힘을 쏟았다. 사형제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콜슨은 신념에 기반한 진취적인 활동을 통해 미국의 가장 어려운 문제(범죄)를 풀 수 있는 모범이 되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신의 심복으로 인생 후반기를 살며 닉슨의 그늘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닉슨이 94년 사망할 때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끝까지 '닉슨의 남자'로 남았다. 닉슨에게 실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당연히 실망했죠, 그러나 난 그 사람 이해합니다, 가족이 가끔 실망을 시키는 경우도 있죠, 그러나 가족은 여전히 가족입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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