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에서 매달 방영되는 천문학 다큐멘터리 '밤하늘'은 가장 오랫동안 같은 사람이 진행해온 TV 프로그램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57년 4월 24일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패트릭 무어 경은 아마추어 천문학자이지만 영국에서 천문학에 누구 못지않게 공헌한 사람으로 꼽힌다. 2011년 3월 6일에는 '밤하늘'의 700회 특집을 방영했는데, 이날 왕립 천문학자인 마틴 리스 경,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존 컬쇼 등과 함께 출연한 잘 생긴 젊은 패널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맨체스터대 물리학 교수이고 역사상 최대의 가속기 실험인 LHC의 아틀라스팀에서 연구하는 브라이언 콕스다.
콕스는 물리학자이면서 한편으로는 대중에게 물리학을 소개하는 전문가로 이름이 높다. BBC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아인슈타인의 그림자' 등의 여러 과학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태양계의 신비', '우주의 신비' 등의 시리즈를 진행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중을 위해 강연하는 프로그램인 TED에도 여러 차례 출연해서 LHC와 입자물리학을 소개했다. 그가 이렇게 대중과의 소통에 능란한 데는 그의 경험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원래 록 스타였던 것이다.
브라이언은 학생 시절에 데어라는 록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며 두 장의 앨범을 냈고, 전설적인 록 그룹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페이지와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록 음악 계에서 지미 페이지와 함께 순회공연을 했다는 것은 물리학자로서는 노벨상 수상자와 함께 논문을 썼다는 것에 비견할 만한 일이다. 브라이언은 이후 '드림' (D:Ream)이라는 그룹에 참가해서 여러 곡을 히트시켰으며,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밴드 생활을 하면서 브라이언은 박사 학위를 받았고, 록 음악을 떠나 물리학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누구나 우리 교육이 잘못되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걸까? 누구는 창의성을 죽이는 주입식 교육을 탓하기도 하고, 누구는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하며, 혹은 등수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문제라고 한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보고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한 가지만 말해보라고 하면, 교육을 받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부란 하기 싫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는 명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부라고 하면 입시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시공부는 단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잠시 고생하는 일이므로 하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까 입시공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입시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해본 일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점점 입시공부를 하는 시기가 늘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어느 한 시절을 입시 공부에 허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3뿐 아니라 고교 전부, 아니 중학교 시절과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공부를 시킨다는 건, 그래서 인생의 십대 시절 전부를 입시공부로 보내야 한다는 건 끔찍하고 잔혹한 일이다.
'밤하늘' 700회 특집에는 이 프로의 단골 출연자인 또 하나의 브라이언이 게스트로 나왔다. 그는 팝 음악 전문지인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대 기타리스트 100명 중에서 26위로 선정됐고, 전 세계적으로 1억 5,00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았을 정도로 콕스보다 훨씬 유명하고, 록 음악 역사에 남는 세계적인 록 스타였다. 물리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가 록 음악으로 너무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학문을 중단했었던 그는 그룹이 해산된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와 30여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리버풀 존 무어스대의 명예총장으로 있다. 그는 '보헤미안 랩소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록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였던 브라이언 메이다.
공자도 논어의 첫 부분에서 강조했듯 공부하는 것은, 즉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새로운 이치를 깨치는 것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두 브라이언은 학문의 즐거움을 잘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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