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린 영화 '건축학개론'이 22일 320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넘어서며 역대 멜로영화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90년대 대학가 풍경을 집어넣어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 '댄싱퀸'은 지난 1월 개봉해 4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지난해 봄엔 '써니'가 736만 관객을 기록하며 스크린에 복고 바람을 일으켰다.
복고풍 영화의 릴레이 흥행을 불황에 따른 단순 유행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가 멀티플렉스체인 CGV에 의뢰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극장예매 관객 연령대별 구성을 분석한 결과 20대 관객은 급감하고 30, 40대가 극장의 새 단골로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학개론'과 '댄싱퀸' 같은 영화들의 상업적 성공이 일회성 현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CGV 자료에 따르면 전체 예매 관객 가운데 20대의 비율은 2006년 54.2%에서 지난해(1~8월 기준) 34.3%로 19.9%포인트나 줄었다. 반면 40대 관객은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 23.4%를 기록, 2006년(9.9%)보다 14.4%포인트 급증했다. 40대 관객 증가는 40대 초반(40~44세)이 이끌었는데 지난해 이들 관객만 17.3%나 됐다. 30대 관객도 지난해 33.7%를 차지해 2006년(27%)보다 6.7%포인트 늘었다. 5년 사이 20대 관객이 줄어든 수치만큼 30~40대 관객(21.1%)이 늘어난 셈이다.
그동안 극장가와 충무로에서 20대는 가장 귀한 손님 대접을 받아왔다. 20대를 일단 주요 관객층으로 정해 영화를 기획하고, 마케팅도 20대에 맞춰 이뤄졌다. 20대를 중심축 삼아 다른 연령대로 영화를 알리고 흥행시키는 전략이 오랫동안 통용돼 왔던 것이다.
극장관객의 고령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론된다. 스마트폰 등 새로운 기기의 등장에 따른 젊은층의 '탈극장' 현상을 하나로 꼽을 수 있으며 불황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는 "20대는 극장 관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다양하게 소비한다"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30대 후반에서 40대의 부모들이 가족 오락을 (상대적으로 저렴한)영화로 즐기는 경향도 늘었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 30대에 영화를 즐기던 관객들이 나이들면서 그대로 주관객층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화홍보마케팅회사 영화인의 신유경 대표는 "지금 30, 40대는 10년 전 주요 영화소비층이어서 그들의 영화 관람습관이 이어지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관객층의 변화에 따라 충무로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는 "기존 제작 관행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의 타깃을 무조건 20대로 맞추는 기획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래의 관객인 20대를 위한 영화 개발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동연 대표는 "30, 40대 관객 증가로 '부러진 화살' 등 다양한 영화의 기획이 가능해졌다"면서도 "20대가 극장을 찾지 않으면 영화계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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