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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좀비' "나만의 좀비로 만들라" 연쇄 살인마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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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좀비' "나만의 좀비로 만들라" 연쇄 살인마의 광기

입력
2012.04.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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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공경희 옮김/포레 발행·268쪽·1만2,000원

동성애자인 서른한 살 백인 남자 쿠엔틴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앞뒤로 반복된다. "내 좀비는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좀비는 "신이 주인님을 축복하시기를"이라고 말할 것이다. "퍼런 내장을 쏟아낼 때까지 마음껏 농락하십시오, 주인님"이라고 말할 것이다.(중략) 우리는 관리인 숙소의 침대에 한 이불을 덮고 누워 3월의 바람소리와 음악대학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종소리를 세면서 같은 순간에 나란히 잠들 것이다."(76~77, 245쪽)

가학 충동과 낭만적 바람이 뒤범벅된 이 몽상을 실현하고자 쿠엔틴은 남자들을 납치한다. 흑인, 부랑자, 외국인 유학생,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가 그 대상이다. 제 아지트로 끌려온 희생양들에게 그는 '경안 뇌엽 절제술', 그러니까 얼음송곳을 안구 위쪽으로 찔러넣고 휘저어 전두엽을 파괴하는 수술을 시행한다.(1940, 50년대 미국에서 실제 자행되기도 했던 이 끔찍한 시술법을 그는 책을 통해 익혔다) "시키는 대로 엉덩이를 갖다 댈" "시키는 대로 곰 인형처럼 폭 안길" 자기만의 좀비를 만들겠다는 망상에서다. 분출하는 피로 변태적 성욕을 채우고 시신 일부로 기념품을 만드는 행위가 거듭될수록 쿠엔틴의 범행은 더욱 대담해진다.

현대 미국문학의 대표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74)가 1995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미국에서 출간 이듬해 최고의 공포소설에 주어지는 브램 스토커상을 받았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주인공 쿠엔틴은 실존 인물 제프리 다머를 모델로 했다. 17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 전시하는 엽기 행각으로 '밀워키의 식인귀'로 불렸던 인물이다.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알코올중독, 종교 광신 등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을 문학의 주요 소재로 삼아온 오츠는 이 소설에서 바닥 없는 인간의 광기와 폭력성을, 그에 걸맞은 거친 필치로 묘파한다.

쿠엔틴은 유명 대학교수를 아버지로 둔 부유한 중산층 출신. 그의 동성애는 친구들에게 거부 당하고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그는 억눌리고 비틀린 내면을 품고 대학을 중퇴한 20대 중반부터 치밀한 계획 아래 납치 살인을 저지른다. 서른 살 때 흑인 소년을 잡았다가 놓치면서 미성년자 성추행범으로 체포되는 유일한 '실수'를 저지르지만, 자기 명성이 실추될 것을 두려워한 아버지가 사법부에 줄을 대며 비호한 덕에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가족은 물론 보호관찰관,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 의사 등 누구도 순종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의 가면을 쓴 그의 실체를 눈치채지 못한다.

여름날 할머니 댁 잔디를 깎던 그의 눈에 옆집 수영장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들어온다. "내 안에서 쳐다보지 마라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애가 탔다.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십대 소년 대여섯이 있었고, 그중 열다섯 살쯤 된 남자애가 내 마음을 빼앗아갔다."(145쪽) 다시 범죄는 시작된다. 첫 백인 희생자가 될 이 소년에게 '다람쥐'라는 별명을 붙인 그가 다시금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목표물을 향해 달려가면서, 소름 끼치는 소설의 후반부가 펼쳐진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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